[성경연구] 바벨론 왕이 히스기야에게 보낸 사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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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전 800년대 메소포타미아의 최남단 지역에 이주해 와서 정착하기 시작한 갈대아인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예언자 하박국은 갈대아인에 대해 이렇게 묘사했다. “(갈대아인들은) 사납고 성급한 백성… 자기의 소유가 아닌 거처들을 점령하는 사람들이요… 그들의 군마는 표범보다 빠르고 저녁 이리보다 사나우며… 마치 먹이를 움키려 하는 독수리의 날음과 같으니라.” (합 1:6-11) 한마디로 사납고 호전적이며 무자비한 정복자들이라는 것이다. 갈대아인들 중에는 떼로 몰려다니며 약탈을 일삼는 무법자들도 있었다. 욥기를 보면 욥이 소유했던 3천 마리에 이르는 낙타를 약탈한 것은 갈대아인들이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욥 1:17)
갈대아인들은 전투에 능한 용맹성을 발휘해서 메소포타미아 최남단으로부터 점차 북상하면서 세력권을 확장해 나갔다. 그 결과 주전 700년대 하반기에 와서는 메소포타미아 남부 전역이 갈대아인들의 영향권 밑에 들어가게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갈대아인 부족장 중에 야심차고 지도력이 출중한 인물이 출현했다. 그는 갈대아인 부족 중에 가장 강한 부족인 ‘비트 야김’(Bit-Yakim) 부족의 부족장 ‘므로닥 발라단’이었다. 그는 외교적 수완도 있어서 이웃에 있는 ‘엘람’(Elam)의 지원을 받아 바벨론을 완전히 장악하고 바벨론의 왕위에까지 올랐다. (주전 721년)
당시는 앗수르 제국 시대였고, 바벨론은 앗수르 제국의 왕의 지배하에 있던 때였다. 그런 때 므로닥 발라단이 바벨론의 왕이 되었다는 것은 곧 앗수르 제국에 대항해서 반역을 일으켰다는 것을 말한다. 앗수르 제국으로서는 당연히 그런 사태를 좌시할 수 없는 일이었다. 앗수르 제국의 응징이 밀어닥칠 상황이었다. 므로닥 발라단은 ‘엘람’ 세력과 연합했으나, 그것만으로는 무적의 앗수르 군대를 대항하기에는 힘이 부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시급히 주변의 작은 나라들을 자기 편으로 끌어들여야 했다.

한편, 앗수르 제국 주변 원근의 작은 나라들은 제국의 위세에 눌려 숨을 죽이고 있었으나, 기회와 여건만 주어진다면 앗수르의 예속에 벗어나려 했다. 이 점을 므로닥 발라딘은 노린 것이다. 그는 유다 왕국도 반(反)앗수르 대열에 끌어들이려 했다. 유다 왕국은 군사 강국은 아니었다. 그러나 반앗수르 연합전선을 펴는 데는 많은 나라가 가담할 수록 다다익선이었다. 이러한 때 므로닥 발라딘은 유다 왕국의 왕이 중병에 걸렸다가 기적적으로 치유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는 히스기야 왕의 쾌유를 축하한다는 명분으로 친서와 푸짐한 선물과 함께 왕의 사절을 히스기야 왕에게 보냈다. 히스기야 왕은 ‘바벨론 왕’이 예물과 사절까지 보내준 것에 감격했다. 사절이 가져온 므로닥 발라단의 친서에는 당연히 같이 손을 잡고 반앗수르 연합전선을 구축하자고 하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히스기야 왕은 앗수르 제국의 굴종에서 벗어날 좋은 기회가 왔다고 생각했다. 바로 얼마 전 앗수르의 산헤립 왕의 공격을 받고 예루살렘의 운명이 풍전등화와 같은 위기를 경험한 일이 있었기에 앗수르 제국에 대한 큰 반감을 갖고 있었다. 히스기야 왕은 바벨론 사절에게 국가의 일급비밀이 되는 무기고까지 모두 보여주었다. 사절에게 유다 왕국의 군사력을 공개한 것이다. 이것은 므로닥 발라단이 주도하는 반앗수르 전선에 가담하겠다는 신호였다.

박준서 교수
<피터스목사기념사업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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