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긴과보아스] 카타콤 예배의 감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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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타콤(Catacomb)은 2-4세기 로마시대의 기독교인들의 지하무덤이었다. 로마시대의 박해기에 기독교인들은 ‘물고기(익투스: 하나님의 아들 구주 예수 그리스도)’ 암호를 사용하며 보통 지하 4층 규모의 무덤인 카타콤에 모여 예배를 드렸다. 그러다가 로마 군인들에게 밀고를 당하거나 발각되면 그들은 원형경기장으로 끌려가 맹수의 밥이 되거나 칼에 찔리거나 톱으로 켜지거나 돌로 쳐서 죽이거나 불에 태워 화형을 시키거나 심지어 끓는 가마솥에 집어 던져져서 순교를 당하였다. 이처럼 그들은 죽음의 환난과 핍박 속에서도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생명과 같이 여기며 그들의 신앙을 지켜 나갔다. 그것은 로마시대뿐만이 아니었다. 일제 강점기에도, 6.25전쟁 중에도 우리의 신앙의 선조들은 예배를 그토록 중시하고 성전을 사수하며 순교신앙을 이어갔다.
그런데 우리는 작년 1월 20일 최초의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온 이후부터 그 어느 때보다도 극심한 안팎의 환난과 핍박의 시험이 시작되었다. 정부나 세상 사람들은 교회의 문을 닫길 원했고 비대면(On-line) 예배를 강요하였다. 곧이어 신학자들과 대형교회 목사들까지도 하나님의 말씀보다도 세상 사람들의 소리에 무너져 갔다. 그래서 매주 토요일 밤마다 결전의 날인 주일을 앞두고 성전에서 밤을 지내면서 자다가도 몇 번이고 깨어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더구나 예배를 드릴 때마다 가장 가슴이 아팠던 것은 2500석 예배당 안에 정부의 방역지침을 따라 20명만 앉아 있는데 그 빈 자리를 바라보며 “평화 하나님의 평강이 당신의 삶에 넘쳐 나기를 평화 하나님의 평강이 당신의 삶에 가득하기를 축복합니다” 하고 축복찬양을 할 때마다 눈물이 나오고 빈 좌석을 바라보며 말씀을 전할 때에도 눈물이 끊이지 않았다.

그것은 어쩌면 나 자신과의 처절하리만큼 힘든 영적인 싸움이었다. 사실 자신의 물질이나 명예나 이권을 위한 것이라면 얼마든지 양보할 수 있겠지만 하나님의 종으로서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서 가장 먼저 기뻐 받으시고요. 맡겨주신 양떼들에게 진정으로 은혜롭고 축복되고 행복하게 할 수 있는 길이 무엇입니까? 더 나아가 말세 마지막 때 하나님의 교회를 바로 세울 수 있겠습니까?” 하고 엎드려 간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신앙의 양심의 마지노선이었다. 아무에게도 말 못하는 담임목사로서의 고뇌요, 자신이 져야 할 십자가였다.
그래서 너무도 외롭고 힘들 때마다 주님 앞에 엎드리면 주님께서는 계속해서 강권하시며 말씀하셨다. “성경 말씀대로만 해라! 나의 명령대로만 행하라!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고 위로하시며 새 힘을 주실 때마다 더 이상 할 말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교회의 영적 그루터기인 성도들과 주의 종들과 함께 카타콤 예배를 드리며 하나님의 기적적인 보호를 간절히 눈물로 간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지난 일 년 동안 거의 매 주일마다 언론기관뿐만 아니라 시청이나 구청이나 경찰까지 검열을 나와서 위반사항을 찾을려고 애썼지만 그때마다 성령님께서 그들의 눈을 다 가리워 주셨다. 또한 교인들 가운데 교회 밖에서 감염된 10명의 확진자가 나와서 예배를 드림으로 주위에 앉은 200-300명의 교인들이 코로나19 검사를 받았지만 단 한 명의 감염자도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더욱 놀라운 것은 지난 1월 7일 한국교회총연합의 대표로서 신정호 총회장이 정세균 국무총리를 만난다는 소식을 듣고 총회 코로나19미래전략위원장으로서 한국교회가 더 이상 물러서서는 안 된다고 하면서 교회가 방역수칙을 철저히 지키며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몇십 명이나 몇백 명이나 몇천 명이나 몇만 명이 모이든지 상관없이 20명만 나와 온라인 예배로 드리라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강력히 항의하면서 한국교회의 예배의 열망을 전달해주실 것을 간곡히 요청하였다. 그런데 모든 교회의 예배의 열망과 기도의 응답으로 정세균 안수집사가 이를 수용함으로써 지난 주일부터 예배당 10%의 좌석에라도 다 나와 감격의 예배를 드릴 수 있었다. 이렇게라도 성도들이 나아와 성전에서 감격의 예배를 드릴 수 있다는 것이 정말 꿈만 같았다. 이보다 더 큰 행복이 없고 감격이 없었다. 지난 일 년 동안 함께 십자가를 지고 예배를 열망하고 성전을 사수하며 순교신앙을 이어온 모든 주의 종들과 장로님들과 권사님들과 집사님들과 성도님들과 청년들과 어린 학생들의 간절한 부르짖음에 대한 하나님의 기적의 응답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불과 전전주일까지의 카타콤 예배는 우리의 생애에 처음 겪어보았던 영원히 잊지 못할 감격의 예배였다.

김의식 목사
<치유하는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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