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비사] 민주적 지도력을 배양한 한국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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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한민국 근대사와 한국교회의 공헌

기독교가 한국에 들어와서 한 일이 무엇인가. 한국교회가 한국 근대사에서 한 일이 무엇인가. 첫째, 민족의 개화이다. 한국의 근대화는 한국교회로부터 왔다. 일본이 청일전쟁을 일으키던 때부터 해방 전후까지 한국에는 4대 근대화 추진 세력이 있었다. 첫째, 친중 근대화이다. 즉 중국과 친해져서 기왕에 신봉하던 유교를 중심으로 근대화하겠다는 것이다. 이들은 나라문을 굳게 닫는 쇄국정책을 고집했다. 둘째, 친일 근대화이다. 일본과 친해져서 근대화하겠다는 것인데 물질문명을 중심으로 근대화하겠다는 것이다. 셋째, 친소 근대화이다. 1917년 공산주의 혁명이 성공하고 난 이후 얘기로 과학주의 유물론으로 근대화하겠다는 것이다. 넷째가 바로 친미 근대화이다. 우리에게 복음을 전해 준 미국과 친해져서 기독교신앙을 중심으로 근대화하겠다는 것이다. 한국의 근대화는 유교의 중국도, 군국주의 일본도, 공산주의 소련도 아닌 바로 미국이 전해준 기독교 신앙과 복음과 그 교회로부터 왔다는 사실을 역사가 환히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기독교 복음은 한국에 들어 와서 한국 교회를 중심으로 하여 첫째 민족을 개화시키고 둘째 민족대표 33인을 배출하는 저력으로 3.1독립운동을 주도하고 셋째 자유대한민국을 건국하고 넷째 북한 공산군의 남침인 6.25를 기독교 신앙으로 이겨내고 다섯째 새마음운동을 기반으로 하는 새마을운동으로 한국의 산업화를 일구어내고 여섯째 기독교 자유의 정신으로 민주화까지 이루어내는 등, 자유대한민국의 주역으로 근대사를 이끌어왔다.

2. 해방 후 한국교회의 가장 현저한 공헌 부분은 정치

건국대통령 이승만은 해방 후 복잡한 국제정치 관계로 해서 10월 16일에야 한국에 들어올 수 있었다. 공산주의자 박헌영의 인공, 김성수 송진우 등의 한민당, 김구 등의 상해임시정부 세력, 그리고 미소공동위원회 등이 자유대한민국 건국의 과정에서 이승만을 괴롭혔던 세력들이었다. 그러나 오직 국민만을 바라보고 기독교와 대척점에 서 있는 공산주의자들과 피맺힌 투쟁을 벌이면서 이승만이 건국해 갈 때 그를 돕는 이들이 있었으니 바로 한국교회였다.

표독한 일제 통치하에서도 한국교회는 그 민주적 조직 질서 안에서 민주적 지도력을 이미 배양하고 있었다. 우선 우리의 자랑스러운 건국대통령이요 세계 굴지의 지도자인 국부 이승만은 대한민국을 성경 위에 세우고 헌법을 성경으로 만든다고 선포했던 크리스천이요 교회장로였다. 다음으로 1946년 현재, 군정청 한국인 고위관료 50명 중 35명이 기독자였다. 그리고 과도입법의원 90명 중 21명이 기독교인인데 그중 7명이 목사였다. 또 입법의원 190명 중 기독교인은 38명에 달하였으며 그중 13명이 목사였다. 마지막으로 1952년 부산 피난정부 장관 대부분이 기독교인이었고 당시 국회의원 총수의 1/4인 40명이 기독교인이었다. 해방 후 자유대한민국을 건국하고 6.25의 공산주의 침략전쟁에 맞서 승리하는 그 길에서 기독교인들의 정치적 공헌이 이렇듯 혁혁하였다.

류금주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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