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강단] 아브라함, 데라 그리고 나 <창세기 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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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면서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부르심 속에 있는 명령은 몇 개입니까? 우리말 번역은 “떠나라”와 “가라”의 두 개 명령처럼 읽히고 있지만, 원문에서 명령어(동사)는 ‘얄라크(to go, walk, come, depart)’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 하나의 명령어를 “떠나라”로 읽을지, “가라”로 읽을지는 독자의 취향이 되겠지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의 정황을 고려하면, “떠나라”보다는 “가라”로 읽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그것이 이 명령을 주시는 하나님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거기(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그곳)로 ‘가려면’ 여기(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를 ‘떠나야’ 하지만, 여기를 ‘떠났다’고 해서 다 거기로 ‘가는’ 것은 아닙니다. 여기를 떠난다 하더라도 거기로 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중간에 다른 곳으로 샐(?)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지시하신 곳에 ‘갔을’ 때, ‘거기’에서 이루어지는 것이지 고향과 친척, 아버지의 집을 떠났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만일, 고향과 친척, 아버지의 집을 떠난 것만으로도 충분했다면, 하나님은 굳이 아브라함을 부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으로는 이미 데라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데라가 ‘갈대아인의 우르를 떠났다’는 것을 밝히고 있습니다.(창 11:31) 맞습니다. 데라는 분명 떠났습니다. 그러나 가지는 않았습니다. 출발했지만 도착하지는 않았습니다. 떠났다는 사실만으로도 하나님이 약속하신 복을 요구할 수 있었다면, 데라는 얼마든지 하나님께 할 말이 있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시선을 느끼면서 데라의 동선을 추적해 봅시다. 하란으로 들어간 데라는 처음의 목적지였던 가나안 땅을 향해 다시 길을 가려는 생각이 없어 보입니다. 하란에 거류합니다. ‘거류했다’는 말은 데라의 체면을 생각해주는 말입니다. 직설적으로는 ‘하란에 주저앉았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은 데라가 다시 일어나 갈대아 우르를 출발할 때의 처음 목적지인 가나안 땅을 향해 길 떠나기를 기다리지 않으셨을까요? 이 점 성경이 말이 없어서 그렇지 하나님은 충분히 기다리셨을 것입니다. 아니, 기다려 주셨을 것입니다. 오늘은 출발할까, 내일은 출발할까 이렇게 하루 이틀을 기다리십니다만 무슨 이유인지 데라는 도무지 떠나지를 않습니다. 마침내 그 마음을 충분히 확인하신 하나님께서는 이제 데라를 포기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합니다. 데라의 아들 아브라함을 부르심으로 하나님은 다시 시작합니다.

그런데 보십시오. 아브라함이 응답하여 떠나면서 정한 행선지는 아버지 데라가 가고자 했던 바로 거기 가나안 땅 아닙니까?(12:5) 데라가 가고자 했던 곳과 아브라함이 가고자 했던 곳이 같다면, 데라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였다고 무리한 주장만은 아닐 것입니다. 하지만 하란에 주저앉고 말았던 데라는 실패했습니다. 하나님이 실패한 것입니까? 아니면 데라가 실패한 것입니까? 하나님의 부르심은 후회하심이 없는 완전한 부르심입니다.(롬 11:29) 완전한 부르심을 완성해야 할 책임은 데라의 몫이었습니다. 데라는 부르심에 응답하기를 실패했고, 실패한 자에게는 ‘하나님이 그를 불렀다’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를 기대할 수 있는 사람은 부르심을 성취해 나가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약속을 이루어주시려는 사람은 ‘어딘가에서 떠나는 사람’이 아니라 ‘지시하는 곳을 향해 나아가는 사람’입니다. 가려면 ‘떠나야’ 하지만 떠난 것이 반드시 ‘간’ 것은 아닙니다. 약속의 성취를 구원이라는 말로, 혹은 복과 순종이라는 말로 바꿔 말해도 거기엔 동일한 원리가 적용됩니다. ‘~ 에서 떠나는 것(from)’과 ‘~ 를 향해 가는 것 또는 들어가는 것(into)’은 신앙생활의 중요한 두 개의 축입니다. 이 둘은 항상 함께 있어야 합니다. 떠나지 않고 들어갈 수 없으며, 들어감은 떠남 없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세상을 떠나는(from) 것으로 시작되는 구원은 하나님의 나라 안에 들어가는(into) 것으로 완성됩니다. 떠나는 것, 즉 구원의 시작도 구원이라 말하지만, 진정한 구원은 날마나 천성을 향해 나아가, 마침내 거기 들어갈 때 이루어집니다. 복은 어떻습니까?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않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않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는 것으로만(form)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며 그 가운데 기록한 대로 지켜 행할 때(into) 얻는 것입니다.(시편 1:1-2, 수 1:8) 순종은 가치 없는 것으로부터(from) 시작하여, 가장 좋은 것까지(into) 진멸했을 때, 비로소 “다 행했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삼상 15:20-21)

약속의 성취, 구원의 서정, 복 있는 삶, 순종의 승리에 중간지대는 없습니다. 신앙의 여정에서 감당해 내야 하는 모든 영적 주제에 중간지대는 없습니다. 나오셨습니까? 떠나셨습니까? 잘했습니다! 그러나 멈추지 말고 가야할 길 끝까지 나아가십시오. 최후승리를 얻기까지 나아가십시오. 데라가 되지 말고, 아브라함이 되십시오. 지금 당신은 데라입니까, 아브라함입니까?

장대영 목사
<안강영락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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