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광장] 죽은 시인의 사회

Google+ LinkedIn Katalk +

오래전 인기리에 상영된 미국 영화 중에 『죽은 시인의 사회』라는 영화가 있다. 1990년에 우리나라에서 개봉된 이 영화는 어느 명문 사립학교에 한 국어교사가 부임하면서 시작된다. 신임교사 키팅은 독특한 수업 방식으로 학생들에게 도전정신을 불러일으키고, 시와 문학을 통해서 시험공부보다 중요한 인생의 의미를 하나씩 깨우쳐 가게 한다는 흥미 있는 줄거리의 영화이다. 키팅 역을 맡은 주연배우 로빈 윌리암스는 희극배우로서 이름을 날렸는데, 말년에 극심한 우울증을 겪다가 2014년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는 안타까운 소식도 곁들여져서 많은 사람들이 이 영화를 특별히 기억하는 것 같다.
그런데 이 영화의 제목이 독특하다. 『죽은 시인의 사회』는 영어 제목인 dead poets society를 직역한 것인데 개봉 당시부터 번역에 대해 논란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영어사전을 살펴보면 society는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하나는 특정한 목적을 위해 조직된 협회, 단체, 조합, 학회라는 좁은 의미의 모임이라는 뜻이 있고, 또 하나는 훨씬 광범위한 사람들의 집단이나 모임이라는 뜻이 있다. 그래서 좁은 의미로 쓰일 때는 보통 협회, 학회 등으로 번역하고, 시민사회, 전통사회, 근대사회, 자본주의사회와 같이 넓은 의미로 쓰일 때는 사회로 번역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영화 제목에서는 society가 명백히 좁은 의미로 쓰였기 때문에 학회나 동아리 정도로 번역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도 굳이 사회라는 용어를 쓴 것은 아무래도 맛깔나게 번역하는 것이 어려웠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dead poets society를 그저 시낭송 동아리 정도로 번역하면 영화 제목으로서는 너무 밋밋해서 좋은 번역이 아닐 것도 같아 보인다. 이 제목은 비록 잘못된 번역이지만 결과적으로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끌고 흥행을 성공시키는데 한몫을 했다고 볼 수 있겠다.
그렇다면 society를 사회(社會)로 번역한 것은 언제 어떻게 이루어졌을까? 근대화 초기 서양문물이 동양에 쏟아져 들어오면서 수많은 용어들이 번역되기 시작했는데 그 대부분이 중국과 일본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졌다. 번역의 방법은 세 가지로 분류해 볼 수 있는데, 소리나는 대로 음역하는 방법, 이미 존재하는 단어를 사용하는 방법, 그리고 완전히 새로운 단어를 만드는 방법이 그것이다.
음역의 대표적인 예는 기하(幾何)라는 단어이다. 기하(幾何)는 원래 한문에서 ‘얼마?’ 라는 뜻의 용어인데, 1607년 중국의 학자 서광계(徐光啓)가 유클리드의 기학학원론(Elements of Geometry)를 번역할 때 고심 끝에 뜻은 다르지만 음이 비슷한 기하를 geometry의 번역어로 사용하였다고 한다.
기존의 용어를 차용한 예는 자연(自然), 경제(經濟)와 같은 단어들이 있다. 자연은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단어로서 원래는 ‘스스로 그러한’ 이라는 형용사로 쓰였으나 명사 nature의 번역어로 사용되었고, 경제는 사서삼경 중 하나인 서경에 나오는 경세제민(經世濟民)을 줄여서 만든 단어이다.
사회는 1876년 일본의 근대사상가 후쿠자와 유키치에 의해 완전히 새롭게 만들어진 신조어이다. 서양의 전혀 다른 정치체제와 사회사상을 소개하고 민주주의, 개인, 자유, 권리, 사회와 같은 새로운 개념들을 하나씩 번역해 가는 힘든 작업을 감당한 선각자들 덕분에 우리가 서양을 배우고 따라잡아 이제는 드디어 경제적으로 앞설 수 있는 위치에 이르게 된 것이 아닐까 한다.

김완진 장로
• 서울대 명예교수
• 소망교회

공유하기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