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산책] 목원대 영문과 삼인방(三人幇)이야기

Google+ LinkedIn Katalk +

조금 늦은 나이 40대 중반에 목원대학 영문과에 부임하여 20년간을 봉직하면서 가장 보람 있었던 일을 더듬어 본다. 별다른 재주가 없는 사람이 수많은 영특한 학생들을 만나 사제(師弟)의 인연을 맺게 된 것이 제일 큰 보람일 것이다. 그 다음으로 떠오르는 일은 같은 학과의 동료로 만나 재직 중에는 물론이요, 내가 정년으로 퇴임한 이후 오늘 까지 핏줄처럼 가까이 지내온 두 사람을 생각하게 된다.

그 두 사람이 바로 나병암(羅秉岩, 1952~ )교수와 최경애(崔敬愛, 1957~ )교수이다. 나 교수는 1985년에 부임하였고 나는 1986년에 부임하였으며 최 교수는 1990년에 목원대학의 가족이 되었다. 부임하고 나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나 교수는 이전 직장에서 내가 가까이 지내던 친구의 대학후배였고 최 교수는 나의 젊은 시절, 그 모친을 어느 영어연구모임에서 만나 함께 공부했던 인연이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오늘 현재, 내 나이는 80대이고 나 교수는 70대이며 최 교수는 60대라는 점이다. 이런 피차간의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지난 30여 년간 서로 주고받은 우정에는 단 한 차례의 굴곡도 없이 아름다운 우정을 꽃피워 왔다는 사실이 감사한 추억으로 마음속에 가득 자리 잡고 있다, 기실(其實), 이런 일은 말이 쉽지, 쉬운 일이 아니다. 어쩌면 이런 연령적인 차이가 서로를 형-동생-누이처럼 지낼 수 있도록 가교(架橋)의 역할을 해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가져보게 된다.

내가 2005년 정년퇴임한 이후로도 자주 “경로위안잔치”라는 재미있는 이름으로 함께 모여 떡을 떼면서 17년째가 되는 최근까지 수시로 만나서 우정을 나누고 있다. 나 교수도 이미 3년 전인 2018년에 정년으로 퇴임을 하였고 막내 최 교수도 다음 학기로 정년으로 퇴임하게 된다. 고등학교에서 17년간 교편생활을 하다가 뒤늦게 대학에 부임한 나는 20년 근속을 하였고 나 교수는 33년을 근속하였으며 최 교수는 내년 정년까지 32년을 근속하게 된다.

최 교수가 최근 목원대학당국으로부터 근속 30년 표창을 받았는데 경사를 축하하기 위해 우리 세 사람이 만나 식사하는 자리가 있었다. 다음은 최 교수의 회고담이다. “흔히 같은 학과에서도 교수들 간에 갈등이 있게 마련이고 또 이해관계가 얽히게 마련인데 지난 30년간 단 한 번의 마음고생 없이 제가 편안하게 지낼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두 분 선배 교수님이 저에게 ‘바람막이’가 되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1997~98년, 한국은 전대미문(前代未聞)의 IMF환란을 겪던 때이다. 우연의 일치로 바로 그때 우리부부는 안식년으로 1년간 미국에 체류하게 되었는데 당시 목원대학 ‘대외교류처’의 부서장이었던 나 교수의 주선으로 목원대학 학생 28명을 1년간 해외연수 프로그램으로 인솔하게 되어 우리 부부로서는 실로 보람 있는 안식년을 보낼 수가 있었다. 특히 목원대학의 자매대학인 미시시피대학에서 학생 28명과 함께 지냈는데 당시 그곳에서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나 교수의 두 남매를 우리부부가 돌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지금도 두 남매는 나를 큰아버지처럼 잘 따르고 있으며 모두 가정을 이루어 미국에서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

훗날 나 교수의 딸은 미시시피대학에서 학사-석사를 마치고 목원대학에서 원어민교수의 자격으로 강의도 하였으며 그 무렵 좋은 미국인 신랑을 만나 대전에서 결혼을 할 때, 내가 서투른 영어로 주례를 맡게 되었으니 영광이었다. 연전에 나 교수와 동행하여 미국을 방문해서 만나보니 내가 주례했던 신랑-신부 사이에 어느덧 남매가 태어나 건강하게 자라고 있었으며 나 교수의 미국인 사위는 미 중앙정부의 공무원으로 일하는 늠름한 모습을 보면서 나 교수가 부럽기도 하였다. 한 편, 최 교수의 아들은 미국에서 영화를 공부하고 귀국하였는데 최근 지방 모 대학에 출강하게 되었으니 이보다 더 기쁜 경사가 어디 있을까!

지난 추석 밑에 세 사람이 카톡으로 명절인사를 주고받다가 매우 놀란 것은 나 교수가 2005년 8월, 나의 정년퇴임 이후, 2021년 8월말까지 만 16년간 우리 셋이서 명소를 찾아다니며 식사하며 담소했던 물경(勿驚) 132회에 걸친 회동의 날짜와 장소를 정성스레 메모했다가 이 진기한 기록을 깜짝 공개한 것이다. 16년이라는 오랜 세월동안 쉼 없이 우의를 다져온 이런 기록은 아무나 넘볼 수 없는 《자랑스런 우정의 역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귀중한 우정을 허락하신 하늘의 섭리에 두 손 모아 감사를 드린다.

문정일 장로
<대전성지교회•목원대 명예교수>

공유하기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