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 믿음으로 한국 땅에 뛰어든 배위량 목사 (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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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에서 상주까지 (41)

상주자전거박물관에서 한 20 분 정도 낙동강 길을 따라 거슬러 올라 가다가 산길을 따라 올라가 면 경천대가 나타난다. 호젓한 숲 속 길을 걷는다는 감격이 크지만, 그보다 경천대의 아름다움은 모 든 것을 압도한다. 이렇게 보배로 운 경관을 숲속에 고이 간직하고 있는 상주의 저력이 느껴진다.

이제 먼저 상주의 역사를 더듬 어 보고자 한다. 독자들이 잘 아 시다시피 경상도(慶尙道)는 경주 (慶州)와 상주(尙州)의 머리글자 를 따서 경상도의 이름이 생겼다. 경상도란 지명은 “757년부터 윤 곽이 생기기 시작하여” 고려 충 숙왕 1년 즉 기원 후 1314년에 경 상도로 개칭하였고, 조선 전국을 13개의 도로 구성하는 행정 조직 을 새롭게 한 “1896년까지 경상도 란 이름을 유지하였다.”

경상도는 조선 전기에 조선 전 체의 “군현의 수, 인구 등에서 가 장 큰 규모의 도였으며 군사적으 로도 중요한 위치에 있었다.” 그 후 임진왜란을 겪으면서 대구의 지리적 전략적 위치를 중요시하 여 대구가 경상도 지역 행정 중심 지가 되었다. 그러다가 조선 실시 1896년 경상도가 남북으로 나누 어져 경상북도와 경상남도로 분 리하였다. 경상도란 지명에서 그 의미를 알 수 있듯이 상주는 경주 와 함께 경상도란 지명의 기원이 된 두 도시 중의 하나란 점에서 상주가 가지는 의미는 특별하다.

구석기 시대부터 상주 지역에 사람들이 살았다는 것이 최근에 상주시 신상리에서 발굴된 구석 기 유적의 조사에 의하여 밝혀지 고 있다. 상주시 낙동면 신상리에 서 발굴된 구석기 유적은 상주 지 역이 구석기 시대부터 “다양한 사람들이 생활하였음을 방증하 는 자료로 볼 수 있다. 상주 지역 에 남아 있는 대표적인 청동기 시 대 유적은 지석묘, 입석 그리고 주거지역이다. 지석묘는 낙동강 이 내려다보이는 구릉 사면이나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소하천변 에 위치한 평지가 야산과 연결되 는 구릉 사면에 군집을 이루어 위 치한다.”

이와 같이 상주는 구석기 시대 부터 사람이 살았던 지역이고 청 동기 시대의 유적도 아울러 상주 에서 발굴될 정도로 문화의 보고 로 떠오르는 지역이다.

상주 지역에 남아 있는 대표적 인 청동기 시대 유적은 지석묘, 입석 그리고 주거지역이다. 지석 묘는 낙동강이 내려다보이는 구 릉 사면이나 낙동강으로 흘러드 는 소하천변에 위치한 평지가 야 산과 연결되는 구릉 사면에 군집 을 이루어 위치한다. […] 지석묘 는 대체로 5~10기가 하나의 군집 을 이루어 위치하며, […] 청리유 적에서 조사된 15기는 경사면 위 쪽과 아래쪽 2개 군(群)으로 나뉘 어져 소규모 군집을 형성하고 있 다. 축조 형태는 지석묘의 상석 (上石)이 하부 석관(석곽)의 뚜껑 역할을 하는 개석식(蓋石式)이 다.

상주에 구석기 시대 유물이 발 견된 것과 청동기 시대의 유물이 발굴된 것처럼 중요한 역사가 또 있는데, 그것은 상주가 사벌국의 도읍지였다는 것이다.

삼국사기 및 삼국유사에는 상주에 사벌국이 있었음을 기 록하고 있다. 삼국사기 지리지 및 열전에 의하면 신라 점해왕 (247~261) 때에 신라에 속해 있던 사벌국이 태도를 바꾸어 백제에 귀부하였고 백제가 사신을 보내 어 강화했으나 왕은 듣지 아니하 므로 석우로 장군을 보내어 정복 했다고 적혀 있어 사벌국은 백제 와 신라의 영토 확장에 눌려 서기 249년 신라에 병합된 것으로 보 고 있다.

신라시대에 전국을 5도로 나누 었는데, 상주가 그 중의 하나의 행정 구역의 중심지였다.

① 上州(상주), ② 下州(창영), ③ 한산주(경주), ④ 실직주(삼 척), ⑤ 비래홀주(안변).

신라 진흥왕은 “13년(552년)에 군사조직으로 5州에 6정(停)을 두어 상주정(尙州停)에 1개 군단 (軍團)을 설치하였”고 진덕여왕 은 자신의 치세 “2년(648년)에 김 유신 장군을 상주행군 총관(摠管)으로 임명하여 신라가 백제와 의 싸움에 전방기지로 활용”하였 는데, 이것들은 상주가 신라시대 부터 행정적으로 그리고 “군사적 으로 아주 중요한 지역이 되었다” 는 것을 나타낸다.

통일신라시대인 신문왕 5년 (685년)에 상주는 전국을 9州 5 小京으로 편성할 때 9주(州) 중의 하나의 행정 중심이 되었다. 신라 의 9州는 다음과 같다.

① 尙州(상주) ② 良州(양산) ③ 康州(진주) ④ 熊州(공주) ⑤ 全州(전주) ⑥ 武州(광주광역시) ⑦ 韓州(경기도 광주) ⑧ 朔州(춘천) ⑨ 溟州(강릉).

상주란 지명은 신라 경덕왕 때 부터 부르게 되었다.

경덕왕 16년(757년)에 사벌주 를 오늘날의 尙州로 개칭하고 혜 공왕 12년(776년)에 1州 10郡 30 懸 을 관할하였다. 상주에 소속 된 郡懸은 오늘날 낙동강 상류 지 역인 안동시 임하면 일대를 경계 로 서쪽으로는 영주시 일부, 청송 군 일부, 예천군, 문경시, 의성군, 군위군, 김천시 일부, 충북의 청 원·보은·옥천·영동· 황간 일대가 관할에 속하였다.

상주시청 홈페이지에 보면 상 주는 6동 1읍 17면으로 구성된 큰 도시이다. 상주는 도농 지역 으로 형성된 지역이다. 상주는 경 상도 북부 지역에 위치하며 영남 지역과 영동 지역 그리고 기호지 방을 이어주는 중요한 길목에 위 치하고 있다. 지금도 상주는 교통 의 요지로 그 중요성을 나타내고 있는데, 경북대학교 상주캠퍼스 가 있어 상주가 경북북부 지역의 학문의 중심지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배재욱 교수(영남신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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