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들의 생활신앙] 국난의 방관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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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세 중국이 망해갈 때 중국의 지식계급들은 나라가 망해가는 것을 보고도 방관만 하고 있었다. 이것을 보고 사상가인 양계초(梁啓超/1872-1923)가 그의 문집인 「음빙실문집」(飮氷室文集)에서 방관하는 지식계급을 여섯 부류로 분류해서 “방관자(傍觀者)로 꾸짖노라”는 제목으로 설파했다. 그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혼돈파(混沌派)-마땅히 자기들이 해야할 일을 모르는 소위 ‘배운 무식꾼’(the learned ignorant)의 무리들이다. 끓기 직전의 냄비물에서 봄날의 따스함을 느끼는 물고기 신세나 불붙은 제비 집 안의 제비가 날이 밝은 줄로 아는 것과 같은 혼돈파는 세상 물정을 모르고 교과서만 외우고 있다. (2)위아파(爲我派)-벼락이 떨어져도 두고 갈 집만 꾸리고 있는 무리들이다. 나라야 망하건 말건 나만 살면 된다고 생각하는 이기주의, 개인주의 지식인들이다. 옳고 그른 대의명분보다 당장 나에게 유·불리만 따져 단기손익계산에 재빠른 먹물들이다. (3)오호파(嗚呼派)-한탄과 한숨만 쉬고 통곡만 하고 있는 자들이다. 입으로만 모든 일을 하는 사람들로서 실천력, 행동력, 추진력과 용기가 부족한 나약한 지식인 부류다. (4)소매파(笑罵派)-남의 등 뒤에서 뒷담화를 즐기며 냉소, 욕설, 비평만 하는 사람들이다. 대안 없는 비판, 비판을 위한 비판, 양비론 등의 비판 위주로 놀부처럼 조롱하고 비웃는 무리들이다. (5)포기파(抛棄派)-자포자기 하는 무리들이다. 남에게는 기대를 하면서 막상 자기 자신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자들이다. ‘내가 나서지 않아도 누군가가 하겠지’라고 생각하며 변방으로만 맴도는 비겁한 지식인들이다. 손 안 대고 코 풀려고 하거나 남이 수고해 밥상차려 놓으면 숟가락만 가지고 덤비는 사람들이다. (6)대시파(待時派)-항상 때가 되지 않았다는 이유를 대며 방관하는 무리들이다. 위선자들로서 방관자 중 가장 간교한 무리들이다. 머리와 입만 살아있지 몸과 손발은 묶어 놓고 품평회나 해설만 하려는 사람들이다. 나라가 망하고 사회가 부패하는데도 방관자들만 득실거린다면 그 나라와 사회는 소망이 없다. 허약하고 자기합리화만 하는 지식인이 많으면 많을수록 그 나라와 사회는 더욱 추악하게 망해간다. 사실을 사실대로 말하거나 고발하지 못하면 어떤 제동장치도 없이 마치 대나무 쪼개듯이(파죽지세) 바람직한 사회는 망해가는 것이다. 발가벗은 임금님이 지나가는데도 누구하나 ‘임금님 발가벗었네’를 외치지 못하고 스스로를 속여가며 서 있는 상황은 정말로 비극중의 비극인 것이다. 스스로 논리를 만들어 상황과 유불리에 따라 전연 다른 소리를 내는 사람들을 ‘사슴가죽에 가로왈(曰) 자’(鹿皮曰字) 또는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이라 한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자동차를 운전하고 갈 때는 건널목(도보자를 위한 신호등) 신호등이 하나도 없기를 바라고 자신이 큰길을 건너가야 할 때는 자동차가 없기를 바라는 아전인수(我田引水)식 태도가 문제다. 특히 어용학자들은 권부나 재벌에 빌붙어서 그들의 잘못을 합리화시켜 주는 이론이나 만들어 주는 무리들을 가리켜 곡학아세(曲學阿世)라 한다. 학문을 굽게 하여 세상(권력과 국력)에 아부, 아첨하는 무리들을 가리킨다. 한경제(韓景帝/BC151-141) 때 시경에 능통한 원고(轅固)란 학자가 강직한 성품에 권력 상관없이 직언을 잘하여 황제가 그를 삼공(三公)의 하나인 청하왕의 태부(太傅)로 임명하여 국사 운영에 큰 도움을 주다가 병으로 그 자리를 물러났다. 다음 황제인 武帝(BC 147-87)도 원고를 현랑(賢良)으로 발탁해 조정으로 불렀다. 그러나 아첨을 일삼는 무리들이 원고의 나이 많음을 이유로 들어 그를 모함하여 파면케 만들었다. 그 후 원고가 다시 조정에 초대되어 왔을 때 그는 자기를 헐뜯고 모함한 공손홍(公孫弘)에게 “배운 것을 가지고 올바로 말하기를 힘써야지 귀한 지식을 갖고 세상에 아부하는 못난짓을 그만두라”고 충고한데서 ‘곡학아세’란 말을 썼다.

김형태 박사

<한남대 14-15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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