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긴과 보아스] 교회에 대한 선교적 상상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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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안식월을 얻어서 재충전의 시간을 갖고 있는 중이다. 몸은 교회를 떠나 있으나, 마음과 영혼은 어디에 있든지 교회에 대한 생각뿐이다. 나는 교회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인간인가보다. 

신대원에 입학했을 때 얼마나 감격을 했는지, 교문에 들어설 때마다 눈물이 나왔다. 신학교 시절에 한국교회만 생각하면 그냥 눈물이 흘렀다. 신학교를 졸업하고 목회현장에 나와서는 교회를 섬기는 것이 그냥 좋았다. 힘든 줄도 모르고 열심히 심방하고, 목회를 준비하던 시절이 지금도 생각해보면 그리운 시절이다. ‘나도 담임목사가 되어서 교회를 새롭게 일으켜 세워야지’라는 꿈이 있었다. 

새로운 시대에 새로운 교회를 세워서 한국교회를 살려야 한다는 교회에 대한 선교적 상상력이 마음속에 살아 있었다. 교회에 대한 꿈이 있었고, 목회적, 선교적 상상력이 살아 있었다. 목회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목회에 대한 상상력을 가지고 목회현장에 뛰어들었던 것 같다. 

그런데 지금 돌이켜 보면, 허황된 듯 하지만 꿈과 상상력이 살아있을 때가 더 풍성했고, 현실적이며 계산적이 되었을 때가 가장 위험한 때인 것 같다. 그래서 목회자의 마음속에 교회에 대한 꿈과 목회에 대한 선교적 상상력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이 가장 위험한 것이다.   

목사는 늘 두 가지 질문을 자신에게 해야 한다. 하나는 ‘나는 왜 목사가 되었는가?’ 혹은 ‘목사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이다. 이는 자기 정체성에 대한 질문이다. 이 질문을 자기 자신에게 끊임없이 해야 하며 이 질문 앞에 대답해야 한다. 그래서 목사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도록 해야 한다. 

또 하나의 질문이 있다. ‘하나님! 교회란 무엇입니까?’ 혹은 ‘하나님! 교회를 어떻게 섬겨야 합니까?’라는 질문이다. 이는 교회론에 대한 질문이요, 목회에 대한 질문이다. 이 질문을 자신에게 끊임없이 해야 한다. 이 질문이 중단되면 꿈도 식어지고, 목회적 상상력도 죽어가게 되는 것이다. 

오늘 우리에게 월터 부르그만이 말한 것처럼 예언자적 상상력이 필요한 때이다. 절망의 상황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생명력있는 신앙을 불어넣어 하나님을 갈망할 수 있도록 하는 예언자적 상상력이 필요한 때이다. 때로는 무모한 상상력으로 죽어가는 교회를 혁신시킬 수 있는 꿈과 상상력이 필요한 것이다. 가장 위험한 것은 상상력이 없다는 것이 가장 위험한 것이다. 

이러한 목회적 상상력을 방해하는 것이 있다. 워렌 버핏은 변화의 과정을 방해하는 세 가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오만’과 ‘관료주의’와 ‘현실안주’라는 유혹이다. 교회도 마찬가지이다. 교회도 관료주의에 물들어 현실에 안주하려는 관성이 강하지 않은가? 이러한 유혹으로부터 자유로운 교회가 어디에 있겠는가?  

이제 우리는 다시 꿈과 상상의 날개를 펴야 한다. 복음에 대한 본질을 더욱 강화하고, 목회적 내용을 단순화 집중화해야 한다. 우리가 하는 모든 사역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의도하셨고 원하셨던 교회의 사명을, 시대에 맞게 이뤄가야 한다. 우리의 꿈이 계획으로 만들어지고, 계획이 실천으로 옮겨져서, 새롭게 일어나는 교회에 대한 꿈과 상상의 날개를 펴야 한다. 

김영걸 목사

<포항동부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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