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과 한국교회] 샤리프가 이룩한 왕조와 모로코의 독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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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모로코에 부는 경제바람

몇 년 전부터 도입된 위성 TV와 인터넷은 근대 이후 모로코 사람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할 수 있다. 2022년 봄에 전쟁을 시작한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유럽 동부의 자동차 부품 업계가 모로코에 주목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 여파로 동구라파권에서 지리적·정치적으로 유럽과 가까운 모로코가 주목을 받고 있다. 자동차 부품 업계가 주요 생산 기지를 모로코로 집중할 전망이다. 이 같은 상황이 모로코 선교에 도움을 줄 수 있다. 2022년 5월 9일의 보도로는, 자동차 부품 업계가 모로코에 주목하는 배경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유럽 영업망의 위기가 꼽힌다. 전쟁 지역 내에 있거나 체코, 불가리아 등 전쟁 지역과 인접한 곳에 있던 공장을 옮겨 생산 안정화를 이룬다는 것. 모로코의 경우 지리적, 정치적으로 유럽과 가까운 데다 유럽연합(EU)과 자유무역협정이 체결되어 있어 수출 관세를 면제받을 수 있다. 이런 자동차 부품 업계의 지각변동이 모호코 선교의 문을 여는데 일조할 수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모로코에 부는 경제바람은 선교에 유리하다.

무슬림국가에는 마호메트의 직계 후손들을 존중하는 전통이 있다. 이러한 후손들을 집합적으로 샤리프(sharif)라고 부르며 마호메트의 성스러움과 정신적 능력의 일부를 물려받았다고 믿는다. 샤리프의 부족과 씨족들은 정치적인, 공인된 종교적 권위까지 얻으면서 16세기에 샤리프 왕조인 사디 왕조를 세우지만 단명으로 끝이 나고 17세기 중반에 알라위 왕조가 권력을 잡았다. 알라위 왕조는 종교적 권위를 업고 외부로 팽창해 정복을 통해 영향력을 확대했다. 18세기쯤 알라위 왕조는 실질적으로 모든 해안 리프산맥 그리고 남동부에 있는 그들의 근거지 주변의 넓은 지역에 대한 통치권을 확립했으며, 지금까지 모로코를 통치하고 있다. 의회가 구성되어 있으며, 의회는 형법, 민법, 상법에 한해 입법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사실 왕령을 승인하는 거수기에 지나지 않는다. 왕의 명령에 따라 의회는 해산될 수 있다.

모로코는 15세기부터 스페인, 포르투갈, 영국으로부터 해안지역을 지배당하기 시작했다. 알라위 왕조는 유럽의 발달된 문물을 받아들이면서 유럽국가에게 많은 권익을 양보하게 되면서 경제적, 정치적 착취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스페인은 1956년까지 지중해 연안을 따라 모로코 북부지역을 지배했으며, 1912년부터 프랑스가 나머지 지역에 보호령을 설치하면서 실질적으로 모로코를 식민지화 했다. 식민지에는 항상 민족주의가 대두되기 마련이다. 1920년부터 모로코에는 민족주의가 성장하게 되어 이슬람 근본주의 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다. 이슬람교를 훌륭하게 부활시키는 목적이었다. 이들은 이슬람교가 프랑스의 지배를 받는 동안 타락했다 보았다. 프랑스 식민주의를 이슬람의 적으로 보고 아랍의 민족주의 운동과 접촉했다.

식민지화에 대한 저항은 극렬한 형태가 되어 프랑스식을 강요한 덕에 모로코 독립운동지도자이며, 버버족학자인 A. 크림의 리프전쟁(1921-1926)으로 나타나기도 했다. 1930년대에는 20만여 명의 프랑스인이 모로코로 이주해왔다.

소기천 박사

<장신대 성서신약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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