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성령강림주일은 지켜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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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강림주일이다. 성령강림은 예수의 탄생, 죽음, 부활, 승천 그리고 성령의 임재로 이어지는 구속사적인 절기 중의 하나로 교회의 탄생이라는 중요한 절기 중에도 불구하고 대다수의 교회들이 외면하고 있다. 성경의 절기인 성령강림주일이다. 인위적이고 문화적으로 만들어진 기념 주일의 필요성도 있지만 교회의 공교회성을 위해서도 성령강림주일과 성령의 역사는 세워가야 한다.

이 시대의 성령의 역사는 코로나 이전과 이후로 나눠 생각할 수 있다. 코로나 이전의 성령의 역사는 은사 중심이었다. 한국교회는 부흥회, 성경공부, 제자훈련, 셀과 알파 그리고 큐티까지. 이 모든 영적훈련은 교회의 성장과 성숙의 훌륭한 도구였다. 하지만 이 이면에는 성령의 역사는 은사를 중시하는 성령운동을 간과할 수 없다. 치유, 축사, 입신, 방언 등의 은사 중심의 성령의 역사는 신사도 운동같이 이단시 되기도 했지만 모 장로의 은사집회에 3천 명이나 되는 신도들이 모이기도 했다고 한다. 이처럼 적잖은 교회와 목회자들은 교회의 부흥과 성장을 위해 은사중심의 성령운동을 해왔던 것이 코로나 감염병으로 인해 중지될 수밖에 없었다. 예장통합 총회는 지난 25일, ‘2022년 코로나19 이후 한국교회 변화 추적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설문결과 코로나19 사회적 거리두기 전면 해제 이후 곧바로 현장 예배에 참석했다는 교인이 10명 중 3명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고 절반이 넘는 교인은 상황을 지켜본 뒤 예배에 참석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대다수의 목회자들과 교인들은 교인수나 재정이 많이 감소할 것이라고 예상했다고 한다. 교회 내의 집회를 통한 은사중심 성령집회 등은 코로나 이전같이 모이기는 힘들 것이다. 

코로나 이후의 성령의 역사는 선교적 교회로 나타나고 있다. 세상을 향하는 선교적 교회는 영국에서 시작되어 미국과 한국에도 교회성장의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선교적 교회는 제3의 교회를 통한 교회의 회복과 성장운동이다. 레슬리 뉴비긴이 인도선교사로 은퇴해 40여 년만에 찾은 영국교회가 파송할 때와는 전혀 다르게 무너져 버린 교회를 보고 선교적 교회를 대안으로 내놓은 것이다. 뉴비긴은 ‘교회란 무엇인가’의 저서에서 말씀의 개신교, 예전의 로마 천주교, 그리고 성령의 오순절교회를 소개하며 종말론적인 교회는 말씀과 예전, 그리고 성령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과 같이 선교적 교회는 성령의 역사를 중시하고 있다. 예수님의 공생애의 시작 역시 성령의 임재다.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해져서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보지 못하는 자에게 보게 함을, 그리고 눌린 자에게 자유롭게 하는 것은 세상을 향한 성령의 역사가 그리스도의 사역이다. 이는 그리스도의 3중직으로 제사장으로 죄에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선지자로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를 보게 하고, 섬김의 왕으로써 세상 권력에 눌린 자들에게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 선교적 교회는 세상을 구원하기 위한 그리스도의 사역으로 예배를 중시하는 제사장 운동, 어려움 당한 이웃을 돕는 선지자 운동, 그러면서도 겸손한 섬김의 왕 운동으로 그리스도의 3중직을 실천하는 성령운동이다. 코로나가 시작이 되고나서 ‘작은 교회 살리기 연합’(대표 이창호 목사)의 교회들은 코로나 방역을 위한 방역 봉사팀을 구성해 봉사활동을 함으로 지역사회의 신뢰와 전도의 경험까지 얻었다고 발표하면서 단순히 봉사활동에 머물지 않고 전도와 교회부흥에도 연결된 성령의 역사라고 한다. 

오늘 한국교회의 위기는 성령의 역사의 위기이다. 세상을 향한 성령의 역사인 선교적 교회는 새로운 성령운동으로 지속가능한 교회이다. 성령운동으로의 선교적 교회, 마을목회는 교회를 사명자로 다시 세우고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하나님의 방법이기에 성령강림주일은 지켜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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