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과 한국교회] 모로코와 북아프리카의 기독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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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모로코의 관계 개선

2022년은 한국과 모로코의 수교 60주년이 되는 해로서 양국 관계의 더욱 큰 도약을 위한 좋은 계기가 되는 해다. 2021년 7월에는 1950년 6·25 전쟁 당시 프랑스군으로 참전한 모로코 군인을 찾기 위해 노력해 부산 유엔군 묘지에 잠들어 있는 두 명의 모로코 출신 군인을 찾아내기도 했다. 모로코 국가기록원이 보유 중인 프랑스 보호령 당시의 고문서를 우리나라의 국가기록원이 복원 중이다. 양측 모두 이민족 지배의 아픔을 겪은 동병상련의 이런 문화적 연결 고리가 점차 오랜 정으로 전환돼 국익에 도움이 되는 효과를 거두기를 기대하고 있다.

모로코의 교육제도는 초등 6년, 중학 3년, 고등 3년, 대학 4년으로 이뤄진다. 대학은 페즈의 이슬람교 대학 등 13개교가 있고 전문대학교 27개교가 있다. 의료시설은 의료보험이 적용되고 절대 빈곤층이 무료로 이용하는 국립과 개인이 부담하는 사립이 있다. 라바트 의과대학에서 해마다 의사를 배출하고 있으나 의료요원은 부족한 실정이다. 

이런 교육 상황에 부닥친 모로코가 속하여 있는 북아프리카의 기독교와 이슬람의 역사가 어떠한지를 간략하게 살펴봄으로써 모로코의 종교적 흐름과 영향을 살펴볼 수 있다. 이러한 과정은 모로코의 종교 상황을 역사적으로 이해함으로 모로코 사람들의 마음에 뿌리내린 종교성을 살펴봄으로 선교전략에 유익한 관점을 제공할 것이다.

교회가 시작된 첫 3세기 동안 이집트를 비롯한 로마 통치하에 있었던 북아프리카 누비아 지방에 이미 교회가 설립되었다. 4세기 중반에는 이집트의 기독교 선교사들이 북동부 이디오피아 지역에 교회를 세우기 분주했다. 고대 전승에 따르면 성 마가가 42년에 이집트에 최초의 콥트 교회를 세웠다. 2세기 말경에는 북아프리카 지방이 벌써 기독교 중심세력으로 등장했다. 8세기부터 이슬람 종교운동이 북아프리카의 기독교를 위협하면서 마호메트가 죽은 지 1세기가 되기 전에 이슬람은 북아프리카를 석권하게 되었다.

기독교가 이렇게 쉽게 붕괴하기 시작한 이유는 신흥 이슬람교가 강력한 것이기보다는 교회 자체 안에서 일어나는 교리적 분파와 신학적 논쟁 때문이다. 도나티스트들과 가톨릭 교회가 주도권 쟁탈을 놓고 싸웠고 동시에 동서 교회가 갈라지면서 급격히 쇠퇴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모로코에는 3세기쯤 기독교가 전래되었고 독립적인 베버족(북아프리카 원주민)은 도나투스파를 따랐다. 8세기 초에 한 무슬림 군대가 알제리 서부와 모로코를 정복하게 되었는데 무슬림족은 베르베르족이었으며 유일하게 북아프리카에서만 정복에 따르는 첫 번째 영향으로 이슬람화가 진행되었다.

개신교의 아프리카 선교는 18세기에 와서야 아프리카 선교를 시작했다. 1737년 모라비안 연합 형제들이 남아프리카 케이프타운에, 1751년 토마스 톰슨이 서부 아프리카로 18세기 말에 시작한 영국과 북미의 부흥 운동과 대각성 운동으로 인해 아프리카 선교가 활발하게 시작되었다. 영국성공회의 한 분파인 크라팜 교단과 1799년 교회선교회 그리고 대학교 선교 운동을 창설한 리빙스턴과 함께 노예무역으로 인해  찢어진 아프리카의 상처를 치유하는데 선교활동이 초점을 두었다.

소기천 박사

<장신대 성서신약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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