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비사] 언더우드 2세와 6.25 전쟁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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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언더우드 2세가 본 6.25 남침 전쟁과 한반도 지정학

“현재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끔찍한 드라마는 일본, 미국 그리고 러시아 삼국의 행동과 상호작용의 결과이다.” 언더우드 2세는 6.25 남침 전쟁을 둘러싼 한반도 지정학을 이렇게 언급했다. 여기 중국이 빠진 이유는 그가 이 책 한국의 비극과 믿음 (The Tragedy and Faith in Korea)의 원고를 출판을 위해 미국으로 송고한 때가 1950년 9월경이었기 때문이다. 6.25 남침 전쟁이 일어난 것을 보고 한국으로 돌아오던 비행기 안에서 원고를 쓰고 이를 중간 경유지 일본 동경에서 미국의 출판사로 부친 것이다. “중공군이 북한을 도와 압록강을 넘어 북한의 산악지대로부터 밀물처럼 쳐들어” 온 때는 그로부터 3개월 뒤인 1950년 12월 초였다.

언더우드 2세는 일본과 러시아를 한쪽으로 분류하고, 미국을 전혀 다른 한쪽으로 분류한다. “그들은 히데요시가 그 나라를 능욕했던 1592년 이후로 본 적이 없는 그들 나라의 경제적 어려움과 대대적인 파괴와 파멸을 둘러보아야만 한다. 일본의 제국주의와 러시아의 공산주의는 그들에게 오랫동안 압제와 비극적인 고통만을 가져다주었다.”

그러나 미국은 달랐다. 물론 얄타회의와 포츠담회의 그리고 모스크바 협정에서 “소비에트 러시아가 한국 안에 자유롭고 민주주의적인 지배체제를 세우기 위한 방법에 대해 미국과 함께 실행 가능한 협정을 맺을 것이라는 개연성 없는 가정”을 미국이 품은 것이 사실이다. “전체적인 결과는 미국이 한국을 비무장화시킨 채 떠났고, 한국을 버릴 예정이며, 더 이상의 경제적 원조를 주는 것에 대해 조차 심각하게 주저하고 있다는 것을 공산주의자들에게 알려준 셈이었다. 그러나 미국의 모든 실수와 동요가 사실일지라도, 우리는 군사적 공격에 대한 책임을 여전히 모스크바에 물어야만 한다.”

2. 기독교 선교가 가져올 새로운 한국

언더우드 2세는 한국을 위해 미국이 앞서 행한 일을 1882년의 조약으로부터 설명하고 있다. 기독교 선교 그것이 한국을 위한 미국의 최대 공로라고 보고 있다. 첫째, 미국은 영국, 캐나다, 호주 교회들과 함께 한국에 선교사들, 의사들, 간호사들, 과학자들을 보냈다(이중 미국 교회의 점유율은 압도적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6.25 남침 전쟁 이후에도 마찬가지이다. 미국과 한국은 혈맹의 동맹국이 아니던가). 둘째, 이들은 성경을 한국어로 번역하고, 한국말로 성경을 가르쳤다. 셋째, 기독교가 힘을 잃은 불교, 샤머니즘, 유교가 초래한 종교적 진공상태를 채웠다. 넷째, 한국의 양심을 교육했다. 다섯째, 민주주의 원칙과 민주주의적 과정을 훈련시켰다.

“지금의 적대행위가 끝나면 대한민국은 다시 일어설 것이며, 수 천 년의 역사를 가진 이 고대인들을 위한 새로운 삶이 펼쳐질 것이다. 평민과 양반의 삶이 아니고, 왕과 백성의 삶이 아니며, 외세의 노예의 삶도 아닌, 주권을 가진 시민으로서의 삶을 시작할 것이다. 이 삶을 향해 그들은 기독교 선교사들의 도움을 받고 훈련을 받아왔다.”

류금주 목사

<전 서울장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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