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이야기] 절대 잊을 수 없는 여행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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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좋아하는 나는 여행의 계획을 잡을 때면 늘 가슴이 설레여서 잠을 설치기도 하는 편이다. 1988년, 큰아들의 미국 워싱턴주 풀맨으로 유학을 가서 공부하고 있을 때였다. 며느리 역시 간호사 시험공부를 위해 타 주로 가야 하는 상황이어서 어린 두 손녀딸을 돌봐줄 겸 우리 부부는 미국방문을 계획했다.

남편(장로님)은 미국 방문을 하는 김에 여행코스를 잡아 비행기 표를 끊자고 제안했고, 그 행로는 풀맨-뉴욕-LA-하와이였다. 너무 기대되는 미국여행인지라 한껏 부푼 마음이어서, 긴 비행시간도 그리 피곤한지도 몰랐던 것 같다. 마침내 미국 큰아들네 무사히 도착했다. 첫 번째 여행을 하게 된 곳은 시애틀이었다.

  번째 여행 – 시애틀

큰아들이 시애틀에서 학회가 있어서 가는 김에 식구들 모두 여행삼아 가기로 했다. 학회가 진행되는 동안 우리 부부는 손녀딸 둘을 데리고 레이니어 마운틴을 관광하기로 했다. 관광객 중 동양인은 우리뿐이었고 날씨 또한 추적추적 비가 내리고 있었다. 아이들을 데리고 여행하기에 좋은 조건은 아니었다. 산 정상에 도착하자 도시락을 나눠주며 건물 안에 들어가서 보니 복도에 벤치가 있었다.

두 손녀와 우리 부부는 그 벤치에 앉아 도시락을 꺼내어 먹고 있었는데, 어디선가 방송이 계속 들려왔다. 아무 생각 없이 계속 식사하고 있는데 어떤 미국인이 우리에게 오더니, 우리에게 식당에 가서 식사하라고 하는 거라며 손짓을 하며 식당 쪽을 알려주었다.

어렵게 식당을 찾아 식사를 마치고 보니 일행들이 안 보였다. 타고왔던 차가 어디에 있는지 언제 출발을 하는지 아무것도 모른 채 어린 손녀딸 둘을 데리고 비를 맞으며 산길을 헤매다가 산 중턱에 주차해 있는 차들을 발견했다.

우리가 타고 왔던 차를 찾아내어 문을 두드리니 열어 주지를 않았다. 겨우 사정을 하여 차 안으로 들어가서 앉아 관광은 하지도 못하고 시간을 보내야 했는데 아직 어린 아기인 둘째 손녀가 계속 우는 바람에 진땀을 뺐었다.

두 번째 여행 – 뉴욕

타 주에 갔던 며느리가 돌아와서 우리는 뉴욕으로 떠났다. John F. Kennedy 공항에 도착해서 남편(장로님)은 2개의 가방을 카트에 싣고 끌고 나갔는데 그곳에 마중나와 계신 신인화 전도사님을 만났다. 그런데 전도사님과 반갑게 인사하는 동안 카트에 실어 놓았던 가방 하나를 날치기 당했다.

가죽으로 된 가방 안에는 여권, 비행기 표, 사진기 그리고 선물들이 있었다. 아뿔싸!! 그땐 정말 하늘이 노래지는 것 같았다. 결국은 뉴욕 관광은 꿈도 못 꾸고 신 전도사님 집에 머물며 신세만 지게 되었다. 맨해튼에 가서 임시여권을 만들고 왕복항공권을 다시 끊고 나서, 맨해튼 거리를 거닐고 있는 사람들을 멍하니 바라보기만 했던 기억이 난다.

세 번째 여행 –  LA

뉴욕을 떠나 LA에 도착했다. 그때가 겨울이었기 때문에 뉴욕에서 입고 온 털코트가 얼마나 덥던지… 큰아들의 윗동서인 김풍운 목사님 집에 머물며 지냈다. 가방을 날치기 당해서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은 것을 아시고는, 사돈어른과 사돈 식구들이 비상금을 챙겨주고, 카메라도 사주셨다. 많은 사랑의 빚을 지고 미안한 마음에 머물고 있던 김 목사님네 주방에서 무언가 도우려다가 그만 food grinder(음식분쇄기)를 망가뜨리고 말았다. 얼마나 미안하던지.

함명숙 권사

<남가좌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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