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목사의 칭호 : 위임목사와 담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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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와 칭호는 사람의 의식을 지배한다. 칭호는 어떠한 뜻을 담아 일컫는 이름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칭호 문제는 민감하고 중요하다. 총회 헌법(통합) 정치 편 27조에 목사의 칭호가 규정되어 있다. 12가지의 칭호가 나와 있다. 평생 교회를 다니는 교인들도 혼란스럽다. 그 중에서도 위임목사와 담임목사다. 위임목사는 지교회의 청빙을 받아 노회의 위임을 받은 목사이다. 위임식을 거행함으로 위임목사의 자격과 지위가 부여된다. 위임목사 전의 목사는 담임목사라고 칭한다.  담임목사는 노회의 허락을 받아 임시로 시무하는 목사라고 규정되어 있다. 헌법은 이와 같이 명확히 구별하고 있다. 문제는 한국의 대부분의 교회가 주보에 담임목사 칭호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교단에서 출판되는 인쇄, 광고물도 마찬가지다. 영락교회와 몇몇 교회를 제외하면 대다수 교회가 그렇다고 알려져 있다.

담임목사는 위임을 받았건 임시적이건 간에 지교회를 전담하여 보살피는 목회자의 의미로 사용되어 왔다. ‘담임’이라는 표현이 개념적으로 마음에 와 닿기도 하다. 관례적으로 오랜 세월 사용되어 온 ‘담임목사’를 그대로 사용하면 혼란은 없을 것이다. 작금에는 위임목사가 ‘담임목사’ 칭호 사용을 꺼려하는 추세가 나타나고 있다. 왜냐하면 헌법상 엄연히 그 직위와 개념이 다르기 때문이다.

초·중·고 선생님의 법적 칭호는 ‘교사’이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교사’ 칭호로 사용하는 예는 거의 없다. ‘선생님’으로 부른다. 일반국민의 정서가 그러하다. 그냥 편하게 ‘담임 선생님’ 으로 칭호한다. 우리 아이를, 나를 맡아 지도하시는 교사를 의미한다. 대학에서는 또 ‘교수님’으로 칭호한다. 언어의 일반문화로 보여진다. 학문의 전문성과 그 권위를 의미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많은 사람이 사용하는 언어가 기준이 되어야 혼란이 없다. 표준어 선정도 마찬가지다.

교회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 그 분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입으로 시인하고 마음으로 믿는 사람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공동체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알기를 원하고 섬기기를 원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깨닫고 왕으로 모시고, 그 분이  다스려 주시기를 원한다.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한 형태이다. 현세에 존재하는 하나님 나라의 주요 형태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계실 때는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있었지만 지금은 그 분의 백성 중에 거하신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지체의 각 부분이다.(고전12:27)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은 무슨 요일을 주일로 지킬 것인가? 한 주의 첫날이어야 하는가? 마지막 날이어야 하는가? 토요일과 일요일 중 어느 날에 안식해야 하는가? 양쪽 모두 자신들의 주장이 옳다고 확신했다. 서로 상대방을 정죄했다. 결국 교회 전체가 분열되었다.

로마의 그리스도인들은 회심하기 전에 이방신전에서 신들을 섬겼다. 이방신들에게 바쳐진 고기를 먹기도 했다.  이제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므로 그 고기를 먹으면 옳지 않다는 사람들이 나왔다. 어떤 사람들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했다. 사도 바울은 이들에게 편지를 써서 가르쳤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하나님의 나라는 능력에 있다.’

특정한 의식과 양식을 강조하는 사람들이 있다. 기도는 일어서서 해야 하는가?  앉아서 해야 하는가? 바닥에 엎드려서 해야 하는가? 무릎을 꿇고 해야 하는가? 성찬식 집례자가 어떤 옷을 입어야 하는가? 정작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만나는 것이 아니겠는가? 결국 이런 것 때문에 사람들이 나뉘고 분열된다.

‘쉽볼렛(Shibboleth), 십볼렛’ 단어 하나 때문에 4만 2천 명이 죽었다.(삿 12:6) 이는 교회의 본질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겠는가?하나님께서는 내 마음의 깊은 곳까지 보신다.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과 같다.”(사 64:6) 우리의 모든 선은 하찮은 것이고 배설물과 쓰레기와 같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그리스도께 돌리시고 그리스도의 의를 우리에게 돌리신다.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총회 헌법에 규정되어 있는 대로 위임목사의 칭호가 일반화되고 교인들에게 거부감 없이 받아들여진다면 좋은 일이다. 그러나 ‘위임목사’보다는 ‘담임목사’ 칭호에 교인들이 익숙하고, 보살피는 목회자라는 개념과 인식과 정서가 많다면 칭호 문제로 고집할 필요가 무엇이겠는가? 이로 인해 갈등과 혼란이 조성된다면 교회의 본질에서 크게 벗어나는 일이다. 갈등은 사랑이 부족하고, 내 주장이 옳고, 양보하지 않으며, 상대방을 배려하지 않고 내 의견대로 고집하는 데서 생겨난다. 혼란은 없는 것이 바람직하고 짧을수록 좋다. 총회 차원에서 연구와 지도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위임목사의 개념 규정을 담임목사에게 적용하고, 담임목사의 개념 규정을 새로 연구하여 규정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든다. 언어는 중심지역의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 것이 표준어가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면 좋을 것이다.

김용관 장로

<광주신안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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