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일저일 생각하니] 과학자 김호길 김영길 형제 총장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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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출신 김호길(1933-1994) 김영길(1939-2019) 형제는 재미 과학자로 우애가 깊었다. 김영길은 김호길 형이 학자로 동료이나 삶의 스승이라 했다.

영국에서 이론물리학을 전공하고 박사학위 취득 후 미국 메릴랜드대학 교수로 재직하고 있을 때 1985년 8월 박태준 포스코 회장 권유로 포항공대 설립에 참여하고 초대 총장이 되었다. 아우 김영길도 서울공대 금속공학과를 마치고 도미유학해 형의 권유로 재료공학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고 어려서 비행기 제작에 꿈이 있어 1974년 한국인 최초로 미항공우주국 연구원으로 일했다. 이 무렵 안동 친가에서 아버지의 전화가 걸려왔다. “기독교인을 사위 삼겠다는 이화여대 출신 참한 규수가 있는데 너 장가 가겠느냐?”라는 질문을 주셨다. “장가가면 교회 나간다 해노이소” 이렇게 김영길은 대답했다. 처녀 총각 당사자간은 만남도 없이 부모간에 약혼이나 다름없는 혼사는 약속이 되었다. 

이때 미국에서 과학학문활동 하던 김호길 형이 모스코바에서 열리는 물리학 학술회의 참가차 러시아 가는 길에 아우 색시감 선을 보고 오겠다고 했다. 김호길 교수는 귀국후 고려대 어느 연구소에 일하는 김영자 연구원을 찾아갔다. 미국에서 오신 과학자요 교수로만 알고 잘 대접해 드렸다. 자신을 선보러 온것인 줄도 모르고 김영자 연구원은 자연스럽게 예의를 갖춰 친절하게 손님맞이를 한 것이다. 러시아 학술행사 마치고 미국으로 간 김호길 형은 아우에게 외모나 성품이 만점 색시감이니 꼭 결혼해서 잘 살라고 했다. 대전 카이스트대학에 교수로 초빙된 김영길은 1994년도 포항 기독교대학인 한동대 초대 총장이 되었다. 

미국에서 만난 의좋은 형제가 포항에서 서로 대학 총장으로 다시 만났다. 대학 발전을 두고 선의의 경쟁도 했다. 김호길 총장은 포항공대에 세계에서 다섯 번째인 광속기를 설치하기로 했다. 한국 노벨물리학상 후보로 촉망되기도 했다. 그런데 광속기가 거의 완공될 무렵 개교 기념일날 교직원 발야구 경기에 참가해 불의의 사고로 아깝게 별세했다. 김호길 총장 후임은 공개 모집해서 60:1의 경쟁을 뚫고 당시 부총장이던 나의 고교 친구 장수영 전기공학박사가 뽑혔다. 김호길 총장이 아우 색시감 선 본 이야기는 나와 장수영 박사를 총장실 응접실에 초대해놓고 손수 커피 대접을 하면서 소탈하고 구수하게 말씀해 주었다. 김호길 총장 재산은 모두 부인이 포항공대 재단에 기부했다. 아우 김영길 총장도 억울한 공금유용죄로 두 달 정도 경주, 대구 감옥살이할 때 한동대 재학생 3백여 명이 스승의 날에 대구교도소로 몰려와 스승의날 노래를 질서 정연하게 부르고 시위 없이 깨끗이 떠나 교도관들이 김영길 총장이 참 훌륭한 스승답다고 존경하더라 했다. 나는 2000년도 초에 합신 전국장로연합회 주최 여름수련회가 경주 코모도 호텔에서 열렸을 때 김동길 총장의 특강을 들었다. 

과학자로 처음 예수 믿을 때 김영자 아내에게 성경의 삼위일체설, 물이 포도주 된 일, 예수가 물위를 걸어간 일 이런 것은 과학적으로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고 했더니 믿음 독실한 아내 김영자 권사는 “당신 과학지식 좀 안다고 성경을 함부로 비판해요 아무 소리 말고 겸손하게 무조건 믿어요.” 이렇게 나무라듯 말했다고 한다. 아내 말대로 의심없이 예수 믿은 김영길 총장은 서울 온누리교회 장로가 되었다. 2019년 6월 30일 하나님 부르심을 받았다. 나도 자랑스런 한동대 갈대상자 회원이 되어 있다. 김호길 김영길 형제는 천재적 과학자요 훌륭한 교육자이다.

오동춘 장로

<화성교회 원로 문학박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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