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목단상] “누구든지 성령이 인도하는 대로 기도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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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오소운 목사 의 글 

1944년 12월, 찬송가연구가(오소문 목사의 별명)의 모교회인 아리실 교회에서는 부흥회를 했습니다. 강사는 일본 고베(神戶)에서 목회를 하다가 추방당한 유재헌(劉載獻) 목사였습니다.

경기도 용인 김량장(金良場)이 고향인 유 목사는 처가가 아리실이었습니 다. 유 목사의 아버지 유흥렬(劉興烈) 장로는 오늘의 전도사 격인 조사(助師)로 활동한, 군내에서 존경받는 분이었습니다. 오 장로와는 호형호제(呼兄呼弟)하는 막역한 사이였습니다. 유재헌 목사는 일본에서 목회하면서 민족정신을 고취하다가, 왜경에게 잡혀 고베 경찰서 유치장에서 고생하던 중, 조선으로 추방당해 형사들에게 감시를 받는 처지였습니다. ‘절대로 강단에 세우지 말라’는 일본 경시청의 엄명이 있었기 때문에, 고향으로 쫓겨 와서 강단에 설 수 없는 그는, 마음이 답답하기 이를 데 없었습니다. 그러나 ‘궁하면 통한다’는 말대로 길이 있었습니다. 장로로서 김량교회를 담임한 유흥렬 장로는, 예배 시간에 “누구든지 성령이 인도하는 대로 기도 하십시오”하고 아무나 자원해 기도를 하게 했습니다. 물론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유재헌 목사가 기도를 시작합니다. 

명 설교가인 그는 사자후(獅子)를 터뜨려 교회가 쩌렁쩌렁 울리는 큰 소리로, 나라를 위해, 죽어가는 심령을 위해 기도를 합니다. 보통 그 기도는 40분 정도 계속되고, 어떤 때는 한 시간을 넘기기도 했습니다. 모든 교인들은 기도라는 형식으로 설교를 하는 유 목사의 기도에 연거푸 아멘으로 화답했습니다. 예배가 끝나자 감시하러 온 일본인 형사가 따졌습니다. “당신, 우리 고베 경찰서에서 ‘다시는 설교를 안 한다’는 각서를 쓰고, 이를 어기면 다시 잡아넣어도 좋다고 약속을 하고 조선으로 돌아왔는데 그 말을 잊었소?” “물론 나는 그 각서대로 설교를 안하고 있지않소?” “설교는 안 했지만 한 시간이나 넘게 기도를 하지 않았소?” “이것 보시오. 일본에 있는 일본인 교회에서도 이 전쟁이 빨리 끝나게 해 달라. 온 국민이 편히 잘 살게 해 달라, 하나님의 정의가 이 땅에서 실현되게 해 달라고, 밤을 새워서 기도하고 있소. 내가 설교를 안 하겠다고 각서를 썼지, 언제 기도 안 하겠다고 각서를 썼소? 그리고 내 기도 어느 대목에서든지 반국가적인 언사가 있었다면 말해 보시오. 당장에라도 자진해 영창에 들어가리다.” 형사는 말도 못하고 돌아갔습니다. 일제하에 우리 신앙의 조상들은 지혜가 있었습니다.  

김종희 목사

• 경신 중ㆍ고 전 교목실장 

• 전 서울노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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