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지성] 죽음에 대한 자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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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누구나 죽는다. 천하를 호령하던 절대군주도 영웅호걸도 죽는다. 아무리 많은 소유를 자랑하던 수백 조 수천 조를 가진 부자도 죽음을 면할 길 없다.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우르크를 다스렸던 전설적인 왕 길가메시(Gilgamesh)도, 불로초로 유명한 중국 진(秦)나라 시황제(始皇帝)도 죽음을 면하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 했지만, 그들도 결국 한줌의 흙으로 돌아갔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예고 없이 찾아 온다. 죽음에는 순서가 없다. 스승보다 제자가 먼저 죽는 경우도 있고, 부모보다 자녀가 먼저 죽는 경우도 있다. 이처럼 우리들은 순서 없이 갑자기 찾아오는 우리 주변의 죽음을 목격하고도 설마 나에게는 죽음이 찾아오지 않겠지 생각하기 쉽다. 그런 생각은 죽음이 현실적으로 자신에게 다가오지 않기를 바라는 심리적 요인의 발로일지 모르겠지만, 인간은 누구나 죽음의 열차를 타고 가는 나그네 인생임에는 틀림이 없다. 

우리는 부고장과 언론 등을 통해 많은 사람들의 죽음의 소식을 접한다. 그런 소식을 접할 때마다 조문을 가서 애도의 마음을 표하고 싶은 사람도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왜 그런 현상이 생기는 것일까? 인간은 똑같은 인간이로되, 고인에 대해 존경하는 마음이 절로 생기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성서에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 교우들에게 “심는 대로 거두리라(갈6:8)”고 말씀한 바와 같이, 그런 마음이 생기는 발단은 죽어간 이들이 한 생애 동안 무슨 일을 실천하다가 어떻게 죽어갔느냐를 생각해 보게 된다는 것이다. 

필자는 매해 현충일에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을 방문한다. 친구 조부인 광복군 소대장 이민화 애국지사묘 등을 참배하고 돌아오다가 채명신 장군 묘를 방문한다. 초대 주베트남 한국군 사령관을 지낸 그는 평소에 “계급은 다르지만 생사고락을 같이 했던 전우들 곁에 묻히고 싶다”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그의 뜻을 존중해 그의 묘가 사병들 묘역에 있고 많은 참배객들이 참배한다. 그의 묘비에는 “그대들 여기에 있기에 조국이 있다”라고 새겨져 있다.

오늘도 내일도 계속해서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들 주위에서 여러 모습으로 죽어가고 있다. 어떤 사람은 연로해서 죽어가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일시적 고통을 참지 못해서 자살로 죽어가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뜻하지 않은 사고로 무고하게 죽어가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질병으로 죽어가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범죄를 저질러 재판장에서 사형 언도를 받고 죽어가기도 하고, 이떤 사람은 국가와 민족 더 나아가 세계 인류를 위해 헌신하다가 죽어가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하다가 열사의 모습으로 죽어가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종교적 신념을 실현하기 위해 순교자의 모습으로 죽어가는 등 여러 가지 모습으로 죽어가고 있다. 

이러한 다양한 죽음에서 어떻게 살다가 죽은 사람이 가장 의미(意味) 있는 죽음의 길인가를 냉철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언젠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모든 것 다 내려놓고 빈손으로 이 세상을 떠나게 된다. 떠나기 전에 아무리 후회한들 이미 한 생애는 끝나버린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슬기로운 현자는 죽음의 병에 이르기 전에 먼저 가신 분들의 죽음을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 죽기 전에 해야 할 일을 하고 떠나기 위해 고심해야 할 것이다. 특히 우리는 인생의 황금기를 자행자지하다가 마지막 날에 후회의 눈물을 흘리는 것은 허공을 치는 메아리일 뿐이다. 죽음은 분명 슬픈 것이지만, 선한 삶의 목표를 세우고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고 할지라도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는 심정으로 마지막까지 빛과 소금의 역할을 다하기 위해 노력할 때, 후회 없는 생애로 끝나게 될 것이다.     조인형 장로 

– 영세교회 원로

– 강원대 명예교수

– 4.18 민주의거기념사업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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