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과 한국교회] 구소련연방의 영향이 푸틴에 의해 재현되나?

Google+ LinkedIn Katalk +

러시아 제국의 식민통치(1868-1917)

사상 처음으로 겨울에 열린 2022년 카타르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가 36년 만에 우승컵을 들어 올리고 막을 내렸다. 단연 주인공은 메시이다. 메시는 펠레와 마라도나의 세계적인 기록을 앞섰고, 우승식에서 카타르 국왕으로부터 이슬람식의 망토를 걸치면서 축구의 신을 이슬람이 우롱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안타까운 것은 귀국한 아르헨티나 선수들이 오픈카를 타고 80km를 행진할 계획이었는데, 시작하자마자 다리 밑을 지나가는 선수들의 오픈카 위로 열광하는 팬들이 추락하는 돌발 상황이 발생해 아수라장이 되고 말았다. 세계 곳곳에서 축구가 종교가 된 지 오래다. 축구는 축구일 뿐인데, 축구에 미치면 어떤 비극이 일어나는지를 보여주는 안타까운 일들이다. 

우즈베키스탄인들끼리 있을 때는 우즈베크어를 사용하지만, 다른 소수민족들이 그들과 함께 있을 때는 여전히 러시아어가 중심이 되고 있다. 물론 구소련 지역 사람들이 정치나 경제적인 문제로 모임을 할 때도 러시아어가 공용어가 된다. 그러나 갈수록 민족주의의 영향으로 러시아어의 영향력은 급속하게 감소하고 있다. 이미 대부분 학교에서도 러시아어로 가르치지 않고 우즈베크어로 가르치고 있으며 관공서에서는 우즈베크어를 하지 못하면 입사하지도 못할 뿐 아니라 기존의 자리까지도 박탈당한다.

16세기부터 중앙아시아의 원주민인 튀르크계 부족들과 대립 상태에 있던 러시아를 19세기에 들어서 이 지역에 대한 세력 확장을 본격화했다. 1860-1870년 동안에 러시아의 짜르는 지금의 우즈베키스탄을 포함한 중앙아시아 튀르크스탄 정복사업을 시작했다. 러시아의 중앙아시아 진출은 당시 중동과 서남아시아를 장악하고 북상하고 있던 영국세력에 대한 견제를 목적으로 급격히 이뤄졌다. 러시아 제국의 알렉산드로 2세는 1865년부터 1876년까지의 군사원정을 통해 중앙아시아를 합병하는 데 성공했다.

부하라와 위바 왕국은 강하게 저항했으나 1868년 6월 부하라는 러시아에 굴복하는 평화조약에 조인함으로써 정복되었고 위바를 사막에 둘러싸고 있다는 지형적 조건으로 보호되었으나 1873년 러시아의 카우프만 장군이 위바를 공격해 그 해 8월 지배자 칸(Khan)이 러시아 보호령을 받아들임으로써 굴복당했다. 우즈베키스탄에서 러시아 식민통치의 주된 관심은 면화 재배를 증진하는 일이었다. 1884년 초에 변종 중 가장 우수한 미국의 면화가 이 지역에서 재배되기 시작했으며 우즈베키스탄지역은 곧 러시아의 주요 면화 제공 원천지가 되었다. 또한, 면화수출을 해서 철도가 건설되었으며 트랜스 카스피해 철도는1899년에 완공되었고 모렌 부르그타슈켄트 철도는 1095년에 완공되었으며 페르가나 철도와 부하라 철도는 1910년에서 1916년 사이에 건설되었다.

1917년 러시아에서 마르크스 사회주의자들에 의해서 주도된 사회주의 혁명은 당시 러시아제국의 지배를 받는 우즈베키스탄을 비롯한 중앙아시아 국가 전체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2022년 3월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무력으로 침공해 무고한 인명을 학살하는 일이 계속된 것은 과거 러시아의 영광을 되찾으려는 푸틴의 망상이다. 이런 일이 우크라이나에서 재발할 우려가 크다. 그래서 유럽이 긴장하고 미국이 우즈벡과 우크라를 방어한다.

소기천 박사

<장신대 성서신약학 교수>

공유하기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