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마드톡] 눈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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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이 안 보이기 시작한 이후 가장 힘들고 아픈 시간을 보내고 있다. 눈이 아픈 것은 그만두고 가슴이 아프다. 하나님은 왜 내게 이런 고통을 주시는가? 안 보이게 하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못하시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 까닭을 묻고 싶다. 눈을 감고 있어도 눈을 뜨고 있어도 통증이 계속되니 이 고통을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다.

‘죽음의 수용소에서’를 쓴 빅터 프랭클 박사는 인간은 어떤 상황에서도 ‘예스’라고 답해야 한다고 했다. 그것만이 인간이 하나님께 할 수 있는 응답이라 했다. ‘노’라고 말하면 왜 안 되는 것일까? 빅터 프랭클은 2차 세계대전 당시 오스트리아의 빈에서 독일 나치에 끌려가 마지막까지 생존한 사람이다. 그의 부모와 아내 그리고 여동생까지 모두 독일 나치에 의해 수용소에서 처참하게 죽임을 당했다. 그만이 유일하게 죽음의 수용소에서 살아남아 생생한 증언을 하고 있다. 그는 오직 의미를 찾는 인간만이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다고 했다. 의미를 찾는 삶에 대한 진지한 증언, 차라리 잔인한 증언을 했다.

만약 내가 그와 같은 상황이었다면 나는 과연 그 상황마저도 ‘예스’라고 긍정할 수 있었을까? 이것도 하나님의 뜻이라고 고백할 수 있었을까? 욥과 같은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빅터 프랭클이 욥과 같은 고백을 한다.

앞이 안 보이게 하시고는 다시 더욱 아프게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모르겠다. 나도 ‘예스’라고 말해야 하나? 앞이 안 보이고부터 내 안에서 끊임없이 자문자답하는 것들이 있다. 왜 수많은 사람들 중 하필 내게 이런 고통을 주시는 것인가? 나는 죽는 날까지 아무것도 볼 수 없단 말인가? 내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들 그리고 그렇게 보고 싶은 내 손자 손녀 그리고 가슴 아프게 나를 사랑하시는 어머니까지, 나는 그들을 끝까지 볼 수 없단 말인가? 나는 죽는 날까지 아름다운 세상과 현란한 신문명과 사람들이 눈으로 즐기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살아야 한단 말인가? 

눈이 아프고 눈물이 난다. 아파서 눈물이 나고 슬퍼서 눈물이 난다. 나는 볼 수 없다. 앞을 볼 수 없다. 볼 수 있다는 희망이 없다.

어제는 의사가 눈 수술을 해도 의미가 없다며 언젠가는 아프지 않고 무감각하게 될 것이라 했다. 그런데 왜 그 말이 그렇게 오래 가슴에 남아 있을까? 지난밤에는 선잠을 잤다. 불면증으로 괴로운 내게 그 말이 깊이 박히더니 더더욱 내 잠을 깨운다. 아픈 수술도 차라리 희망이 있다면 감수하려 했는데 이제는 그 수술마저도 의미가 없다 한다. 나는 갑자기 의미를 잃고 희망을 잃었다. 

욥이 누구이며 빅터 프랭클은 누구인가? 재산을 잃고 자식과 가족을 하루아침에 잃어버린 후에도 그들은 ‘예스’라고 했다 한다. 그런 그들의 고백은 정당하나 나는 오늘만큼은 ‘예스’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유해근 목사

<(사)나섬공동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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