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연구] 시(媤)형제 결혼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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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의 신명기는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을 이스라엘이 영원히 관계를 끊고 상종해서는 안 될 기피 민족으로 규정하고 있다. (신 23:3-6) 인종차별적인 가혹한 말씀이다. 그러나 구약에는 신명기의 이방 민족 배타주의(exclusivism)와는 정반대되는 포용주의(inclusivism)를 강조하는 책이 있다. 대표적인 책은 ‘룻기’이다. 룻기의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지만, 자세히 정독해보면 이방 족속들을 차별 없이 포용하는 만민주의적 메시지를 강하게 전하고 있다.

베들레헴에 엘리멜렉과 나오미는 두 아들과 같이 살고 있었다. 그 땅에 큰 흉년이 들자 엘리멜렉의 가족은 사해 동편 지역인 모압 땅으로 이주해 갔다. 가장이 되는 엘리멜렉은 모압 지방에서 죽고, 두 아들은 모압 여인들과 결혼했다. 장남의 아내는 오르바였고, 둘째 아들의 아내는 룻이었다. 얼마 후 불행하게도 두 아들마저 죽고, 나오미, 오르바, 룻 세 여인들만 남게 되었다. 가나안 땅에 흉년이 그쳤다는 소식을 듣고, 나오미는 떠나온 베들레헴으로 돌아가려고 길을 나섰다. 두 며느리들이 나오미를 따라오자, 나오미는 그들을 만류하며 그들의 땅 모압 지방에서 재혼해서 잘 살라고 권했다. 그래도 따라오려는 며느리들을 향해 나오미는 이렇게 말한다. “내 딸들아! 돌아가라! 내 태중에 너희의 남편 될 아들들이 아직 있느냐? 나는 늙었으니 남편을 두지 못할지라. 가령 오늘 밤에 남편을 두어 아들들을 낳는다 하더라도 너희가 어찌 그들이 자라기를 기다리겠느냐!” (룻 1:11-13)

시어머니 나오미는 두 며느리에게 도대체 무슨 말을 한 것인가? 그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구약시대에 행해졌던 특이한 결혼제도에 관해서 알 필요가 있다. 신명기 25장에는 소위 ‘시(媤)형제 결혼제도’에 관한 규정이 있다. 결혼한 남자가 자녀 없이 사망한 경우, 죽은 자의 형제는 과부가 된 형수(또 제수)를 아내로 맞아 자녀를 낳아 죽은 형제의 혈통이 끊어지지 않게 하는 제도이다. (신 25:5-6) 이런 결혼제도를 영어로는 Levirate marriage라고 한다. (levir는 라틴어로 ‘남편의 형제’라는 뜻으로, 과부가 된 여자는 죽은 남편의 형제와 결혼한다는 뜻이다.) 한국어로는 ‘취수혼’(娶嫂婚), 또는 ‘시형제 결혼’이라고 한다. 이러한 결혼제도의 목적은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 살아있는 형제가 과부가 된 형수(또는 제수)와 결혼하고 자녀를 낳아 죽은 형제의 가계가 끊어지지 않게 해주기 위한 것이다.

둘째, 사망한 자의 가문에 속한 재산(주로 토지)이 그 가문에 계속 유지되게 하려는 것이다. 구약성경은, 경제적으로 부익부 빈익빈을 막기 위해서, 한 가문에 속한 토지가 다른 가문으로 옮겨가거나, 다른 지파로 옮겨가는 것을 금지했다. 그런데 만일 남편이 죽은 과부가 다른 가문의 남자나 다른 지파에 속한 남자와 재혼하는 경우, 죽은 자의 재산(토지)은 재혼한 남편을 따라 다른 가문이나 지파로 옮겨가게 될 것이다. 과부가 죽은 남편의 형제와 결혼하는 제도는 이러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을 방지해준다.

셋째, 구약시대 과부에게는 상속권이 없었다. 따라서 과부는 경제적으로 빈궁한 처지에 처할 수밖에 없었다. 시형제 결혼제도는 과부가 된 여인의 생활을 죽은 남편의 형제가 보장해주는 목적도 있었다.

박준서 교수

<피터스목사기념사업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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