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일저일 생각하니] 하늘의 별 따기와 대학교수 되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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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964년도 해병대 만기제대하고 이듬해 3월에 서울에서 중·고교 교단에 섰다. 정의롭게 쓴소리하는 교사로서 사학재단 운영의 사립학교에서 아예 교감 교장을 바라보긴 어려웠다. 열심히 3대 송골교육철학인 첫째 거짓없이 살자(참삶), 둘째 뼈있게 살자(뼈삶), 셋째 빛있게 살자(빛삶)의 교육을 철저히 제자들 가슴에 심어 주었다. 

그런 가운데 나의 목표인 뼈삶은 대학의 길로 나가는 꿈이었다. 3남매와 누이동생 셋 교육과 생활전선에 뛰느라고 나는 대학원 진학의 길을 찾지 못했다. 그동안 교무실에서 우리 한국 고유의 정형시 시조를 부지런히 습작했다. 우리 한국의 얼인 짚신정신을 배경으로 짚신사랑 시조를 많이 창작했다. 중앙여중·고교에서 독립문 대신중·고교로 옮겨와 곧 연세대 교육대학원에 적을 두었다. ‘옛시조에 나타난 애국사상연구’ 제목으로 1974년도에 교육학석사를 받았다. 1975년도에 성신여대 총장 역임하신 고(故) 한영환 교수님 추천으로 의정부 신흥보건전문대학 야간에 출강했다. 대학교수 전임자격이 박사학위 소지자로 승격되어 나는 다시 한양대 대학원에 진출해 1980년대에 〈가람 시조연구〉로 문학석사, 〈위당 시조연구〉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연세대 모교에서는 1983년도, 1988년도 2회에 걸쳐 출강기회를 주었다. 연세대 사회교육원 강의도 10년 주었다. 그리고 모교가 된 한양대학교에서 학부출강, 사회교육원 연구교수, 한양여전 출강의 기회를 주었다. 

20년이나 근속한 대신중·고교를 떠나기 아쉬웠으나, 나는 이제 대학교에 분필을 잡아야겠다는 생각으로 30년 몸담은 중·고교 교단을 떠났다. 그 후 내게 대학출강의 길이 열려 광운대, 성신여대, 서울여대, 국립한경대, 방송통신대, 총신대사회교육원, 추계예술대, 덕성여대,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숭의여대, 부천공전, 인하공전, 영등포성서신학원 등 많은 대학 강단에서 참삶, 뼈삶, 빛삶의 송골교육철학을 비롯해, 한글사랑, 나라사랑, 짚신사랑을 열렬하게 철저히 강의했다. 대학교수 전임의 길은 금맥, 인맥, 지맥, 학맥 등이 배경이 되어 전임의 길이 열린다고 했다. 내가 연세대 후배 유순영 소설가를 광주대학교 문예창작과 ‘소설론’ 교수로 추천하기 위해 나는 유순영 후배와 함께 광주 김인곤 이사장댁을 찾아갔다. 연세교육대학원 나와 동문인 그는 우릴 반갑게 맞아 주었다. 

당시 야당 국회의원인 김인곤 이사장은 대학전임교수 되는데 1억 원, 7천만 원 든다는데 광주대학교는 그런 부조리한 금품거래가 없는 깨끗한 대학교라고 강조해 말했다. 

이 말을 내게 남긴 김인곤 이사장은 나의 추천을 신뢰하고 소설론 교수로 채용해 주었다. 유순영(작가명 유치영)은 하늘의 별따기보다 더 어려운 전임교수가 되었다. 추천 선배로 지금도 기쁘다. 나는 모교연세 스승 최현배, 김윤경 두 교수님 거울같은 길을 따라 걷고 있다.

오동춘 장로

<화성교회 원로 문학박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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