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교사] 믿음으로 한국 땅에 뛰어든 배위량 목사 (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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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위량 순례단의 역사(33)

상주에서 안동까지(8)

예천용궁에서 풍산으로 가기 위해서 예천군 호명면과 안동시 풍천면을 거쳐서 가야 된다. 상주에서 용궁으로와서 하루 잠을 자고 이튿날 아침 용궁에서 예천을 거쳐 풍산으로 가는 길이 멀다. 예천에서 풍산까지 가는 길을 필자는 주로 어두운 밤에 자주 걸었다. 그것은 예천 용궁에서 풍산까지를 하루 일정으로 잡아서 순례를 행했기 때문이다. 

순례에 참석하신 분들은 다 아실 것이다. 낮 동안에는 순례하는 이들의 마음이 대부분 한없이 너그럽고 순례를 즐기고 감격하고 느릿느릿 걷고 싶어하고, 쉬어가기를 원한다.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해야 된다고 주장한다. 

같이 순례하는 단원 중에 순례를 나오면 순례만 해서는 안된다고 하면서 반드시 해야 된다고 주장하는 대표적인 게 몇 있다.

1. 노방 전도를 해야 된다.

2. 기독교 문화 유적 탐방을 해야 된다.

3. 환경보호 운동을 겸하면서 순례를 해야 된다.

주로 위의 세 가지를 주장하면서 실제로(實際)로 노방전도를 열심히 하시는 분들, 비닐봉지를 가지고 와서 휴지를 주우며 순례를 하시는 분, 근처의 기독교 문화 유적지를 탐방하시는 분.

대표적으로 이렇게 행하는 유형이 나타난다. 그런데, 배위량의 제 2차 순회전도 여행길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배위량 순회 전도 여행단은 1893년 4월 18일에 동래를 출발해 경상도를 한 달여간 순회전도여행을 마치고 부산으로 돌아온 날이 5월 20일이니 근 한 달 동안 걸린 것이다. 물론 중간에 쉬기도 하고 무슨 어떤 사정으로 머물러 있어야만 했던 때도 있다. 그런데, 산티아고 순례를 행한 경험자는 잘 알겠지만, 순례란 것이 자기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다. 여건과 환경이 허락해야 자기 계획대로 순례를 할 수 있다. 

아무리 환경이 허락해도 자신과 순례에 함께 나온 동료가 건강이 따라주지 않으면 계획대로 순례를 할 수 없다.

아무리 모든 구성원이 건강해도 환경이 허락하지 않으면 순례를 멈추어야 한다.

그것이 왜 그런가 생각하는 분들은 자신이 실제로 순례자가 되어 보면 속속들이 깊이 알 수 있을 것이다.

순례단원들과 함께 순례를 나와도 순례의 출발지가 있고 순례의 목표지가 있다. 순례의 목표지에서 순례를 마치고 그곳에 숙박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곳에서 순례단의 해단식을 하고 각자의 길을 가는 경우도 있다.

순례단을 모집해 함께 배위량길을 여러 날 동안 순례를 행하기도 했다. 그런데 한국의 사정이 목회자들이나 평신도들이나 학생들이 여러 날을 비우고 순례를 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다. 그 만큼 여유가 없는 삶이다. 산티아고 순례 길에서 만난 한국 청년들은 직장인인 경우는 순례를 완주하기 위해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오기도 하고, 학생들은 순례를 완주하기 위해 방학동안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모아 한 달 순례를 작정하고 오기도 한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보존하기 위해 스페인은 국가적으로 그리고 교회적으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고 여러모로 지원하고 길에 순례객읃 위한 많은 편의 시설이 준비되어 있다. 그 순례길의 역사는 벌써 천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한국의 배위량 순례길은 이제 시작 단계이기에 모든 것이 미비하고 준비가 되지 않았다. 그래서 출발지에서 목표한 목표지까지 예정한 시간에 도착해야 위험에 처하지 않는다. 

순례출발지에서 목표지까지 예정 순례 시간을 정하고 출발하지만, 대부분의 순례자의 보폭과 걸음 속도와 건강 상태가 다르고 순례에 임하는 마음이 다르다. 

순례출발지에서 목표지까지 순례만 행해도 성공적인 순례라고 생각하는 이, 순례는 노방전도를 겸해야 그 순례가 완성된다고 생각하는 이, 순례에 환경 보호를 해야 순례의 의미가 있다는 이, 순례시에 그 지역의 문화 유적을 탐방하고 그것을 감상하는 것을 큰 가치라고 생각하는 이.

그래서 순례를 시작하고 이런 문제로 한 동안 토론이 벌어진다.

실제로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방향으로 행동하는 이, 그것을 통제 못한다고 불평하는 이, 순례하다가 더 이상 못가겠다고 하는 이, 좀 더 빨리 걸어 순례목표를 정했으니, 그 목표지까지 가야 된다고 생각하는 이, 순례를 시작했으니, 그것으로 족하니 천천히 유람하면서 즐기면서 가자는 이.

이렇게 생각들이 다 다르다.

그래서 단체 순례를 할 때는 순례단을 이끄는 순례단장이 그 순례단의 지도자가 되어 그 순례단을 잘 이끌어야 사고를 대비할 수 있고 성공적인 순례를 행할 수 있다.

어떤 개인이 순례하는 개인이나 단체 사진을 찍어 개인 SNS에 올리는 이도 있고, 그것에 대해 많이 염려하는 이도 있다. 순례는 즐거운 마음으로 참여가 가능하지만,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각자는 모두 마음의 짐을 다 가지고 있다. 배위량 길을 걸으면서 그 길에서 자신의 발자취를 돌아보고 그 길에 투영된 자신의 인생길을 되돌아보기도 하면서 같이 걷고 잇는 동료를 인식하기도 하고 그와 함께 걷는 자신의 존재를 깨닫는 다면 그것은 큰 행복이 아닐까 생각된다.

언젠가 텔레비전의 어느 프로그램에 젊은이들이 시골의 노인들과 생활하면서 농촌의 노인들과 대화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70-80세쯤 되시는 노인들 모두 그날 할 일이 너무 많아 너무 너무 바쁘다는 말을 모두 다 하시는 것을 보고, 필자는 나만 바쁜 것이 아니라, 세상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일로 바쁜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이제 쉴만한 나이가 되었지만, 여전히 쉬지 못하는 것이 인간이다. 

순례를 나올 때 그 하루의 순례에 자신의 모든 인생의 과제를 다 할 수 없다. 그 인생의 과제는 평생동안 해도 해도 다 못하고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 인간이다.

순례를 나오면서 무거운 짐을 지고 나와 이것도 저것도 다 행하는 것도 좋지만, 다 따져 보고 그 길을 말없이 걸어 보면서 그 옛 길을 걸어간 130년 전의 배위량을 생각해 보고 그 당시 바람 앞에 등불과 같은 시대상을 생각해 보고, 오늘 날 그 길을 걷고 있는 자신을 돌아 보면서 기도하고, 말씀을 묵상하고, 말없이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고, 조용히 우지짖는 산새소리 풀벌레 소리도 들어 보고, 하늘로 날아다니는 잠자리도 바라보고, 조금 마음의 여유가 생기면, 같이 걷고 있는 옆 사람도 돌아보고 하면서 순례를 한다면, 무슨 한 가지라도 찾고 깨닫게 될 것이다. 순례는 무슨 특별한 것이 아니고, 자기를 새롭게 발견하는 길이다. 그런데 무슨 한 가지라도 얻는다면 그것은 큰 깨달임이 아닐까 생각한다. 

우리는 우리 인생길에 너무 많은 것을 생각하고, 너무 많은 것을 얻고, 너무 많은 것을 이루고자 하는 것이 아닌가? 

우리가 순례를 하는 동안 자신을 돌아보고 자신의 한계를 생각하고 그 한계 안에서만 살 수 있는 자신의 삶을 바르게 설계하는 것이 중요한데, 우리는 너무 시간이 없고 너무 바빠 그것을 생각지 않고 그냥그냥 주어진 시간을 살아간다. 

독자 여러분들은 순례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순례는 노방전도, 순례는 문화 탐방, 순례는 자연보호운동, 순례는 옆 사람과 사귐의 최고의 순간, 순례는 건강을 위한 최고의 순간, 순례는 하나님과 가지게 되는 최고의 순간. 여러 가지 답이 나올 것이다. 다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필자는 인간의 한계를 깨닫고 그것으로 인한 실수를 줄이는 것을 찾는 것이 순례가 아닌가 생각한다.

배재욱 교수

<영남신학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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