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과 한국교회] 이슬람 선교지의 어려움은 선교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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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즈베키스탄 이슬람 선교의 가능성

세계 인권선언의 제18조는 종교의 자유 문제를 다룬 것으로 모든 사람은 사상, 양심 및 종교의 자유가 있다고 선언한다. 다수의 이슬람 국가를 포함한 대부분의 회원국이 이 선언에 서명했다. 물론 서명 자체가 조항 준수를 의미하지 않지만, 세계와 어깨를 나란히 하려면 종교의 자유에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매년 수천 명의 이슬람들은 여행, 사업, 교육 및 기술 훈련을 목적으로 각처에서 개방된 사회의 모습과 관용 정신, 정당한 대우의식 및 종교의 자유를 피부로 느끼게 된다. 이것은 곧 이슬람 제국에 퍼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또한, 정치적 분위기가 변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우즈베키스탄은 약간의 틈밖에 보이지 않는 척박한 땅이지만 하나님은 언제, 어떤 방법으로 이곳에 복음으로 채우실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우리는 활짝 열릴 그 문을 향해 끊임없이 기도하고 노력해야 한다. 복음을 알지 못하고 죽어 가는 수많은 영혼을 위해 지금의 준비는 그때의 알찬 수확이다.

1884년 시작되었던 한국의 개신교 선교 역사는 1903년 원주 부흥 운동을 시작으로 1907년 평양대 부흥 운동, 1909년 백만인 구령 운동, 그리고 2023년 미국 애즈버리 대학교에서 일어나고 있는 자발적인 영적 부흥으로 이어지는 놀라운 구원의 역사로 이어졌다. 부흥을 주시려는 하나님의 섭리와 부흥을 사모하는 선교사들과 성도들의 기도와 염원이 있었기에 한국은 세계 교회가 부러워할 만한 부흥과 성장의 역사를 이뤄왔다.

한국의 부흥은 한국에 온 선교사들의 부흥을 사모하는 한마음과 한뜻이 이루어낸 결과이기도 하다. 우즈베키스탄 선교 10여 년이 넘게 흘렀다. 우즈베키스탄에도 한국에서와 같은 대부흥이 일어나려면 그곳의 모든 선교사와 연약한 성도들이 놀라운 부흥의 역사를 사모하며 기도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기심과 개인주의로 인해 분열되고 서로에게 상처를 준 한국의 선교사들이 우선 한 마음이 되어야 한다.

어느 선교사가 기독신문 칼럼에서 현지인들과의 만남보다 더 어려운 것은 동료 선교사들의 만남이라고 고백한 것을 본 적이 있다. 이는 이슬람 선교지의 어려움은 선교사들의 문제라는 인식이 퍼져 있다. 5년 동안 근무하던 대학에서 하루아침에 쫓겨나고 사랑하는 아기가 유산될 정도로 동료 선교사들과의 마찰은 비싼 대가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우즈베키스탄은 춘추 전국시대처럼 선교사들이 사분오열되어 있기에 연합해 큰일을 하지 못하고 있고 서로의 힘을 소진하게 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즈베키스탄의 복음화와 부흥을 위해 한마음으로 구성된 선교사연합회를 구성해야 한다. 그리고 그 선교사연합회는 지금부터 100여 년 전 한국을 부흥시켰던 서양 선교사들을 본받아 우즈베키스탄의 대부흥을 소망하며 기도하며 한마음으로 우즈베키스탄 사역의 동역자가 되어야 한다. 아울러 한국의 성도들은 우즈베키스탄이 이슬람권에서 차지하는 역할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더욱더 힘써 기도해야 하며 우즈베키스탄 선교를 하는 교회들과 선교단체들은 좀 더 체계적이고 준비된 모습으로 새로운 세기를 향해 우즈베키스탄 선교를 점검하고 창의적인 방법으로 우즈베키스탄 선교에 접근해야 한다. 다음 연재에서는 카자흐스탄의 선교 방향에 관해서 다루고자 한다.

소기천 박사

<장신대 성서신약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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