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종려주일 의미와 성도들의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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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엘림에 이르니 물 샘 열둘과 종려나무 일흔 그루가 있는지라’(출 15:27). 그곳에 장막을 치어 생명을 얻게 된다. 역사적으로 종려나무는 아름다움과 승리를 상징해왔다. 종려나무가 사순절 여섯째 주일,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기리는 종려주일(Palm Sunday)에 선택받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종려주일이 순례자 에게리아 편지(Egeria’s writing, 381/2∽386)에 언급되었다고는 하나 14C초 이탈리아 조토에 이어 로렌젠티가 그린 성화를 보면 중세시대 때는 지켜진 것으로 추측해볼 수 있다. 

철저하게 금육과 경건생활을 하면서 종려가지를 나누었던 당시와는 사뭇 다른 오늘날, 종려주일의 의미를 새겨보고 한 사람의 종려나무 신앙인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다음과 같은 3가지 자세를 묵상해본다.

첫째, 종려나무 신앙

우리에게 종려나무는 생뚱맞다. 기후적으로 근동이나 지중해 지역에 분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대 그리스에서는 승리하는 선수에게 종려나무 가지를 수여했다. 1320년 고딕화가 피에트로 로렌제티는 아시시 프란체스코 바실리카에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Entry of Christ into Jerusalem)’이라는 프레스코화를 그린다. 그는 나귀를 타시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중심에 놓고 바로 뒤 열에는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을, 앞 열은 무리들을 배치했다. 말씀에 순종해 나귀를 타신 예수님은 사랑스럽게 승리자처럼 오른손을 들어 무리를 축복하신다. 무리는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요 12:13)라고 외치며 그 가지를 흔들기도 하고, 깔아드리며, 어떤 무리는 겉옷을 벗어 깔아드린다. 그러나 단 한 사람 베드로 곁 가룟 유다만 화난 인상으로 베드로를 쳐다본다. 제자들은 다 머리에 할로(Halo)가 있으나 그만 없다. 방향이 다르다. 종려나무는 곁가지 없이 곧게 위로만 성장하며 맨 위에서 가지 잎과 꽃과 열매를 맺는 성질을 갖는다. 

한 방향성을 발견하게 해준다. 화면속의 건축물들이 로마네스크 양식(종탑과 세례당)과 첨두아치의 고딕요소를 담고 있는 것으로 보아 중세도시를 배경(Ground)으로, 인물과 종려나무는 그림(Figure)으로 그려졌다. 나귀와 제자들, 그리고 종려나무를 든 무리들은 예수님을 구세주로 신앙했기에 한 방향으로 그의 그림이 되어주었다.

둘째, 틈새를 주지 않는 신앙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로부터 주일을 뺀 40일 기간을 사순절((四旬節, Lent-봄)이라고 한다. 중세시대와는 달리 오늘날 교회는 금육은 아닐지라도 기호식품을 줄이고 경건과 절제된 생활로 말씀 가운데 묵상하도록 권장한다. 어릴 적 부활주일은 달걀 먹는 날로 기억된다. 

결혼 이후의 부활주일은 계란은 물론 칸타타를 연주하며 사순절 절기를 지키는 양상이다. 수년 전 부활절 칸타타를 준비하면서 받은 은혜가 컸다. ‘십자가’ 곡 중 예수님 역할을 담당했다. 비전공자인 나는 맨발로 오페레타처럼 연극까지 더해야 했기에 그야말로 고난의 길이었으나 영성의 시간이었다. 찬양은 틈새를 메우는 가장 좋은 도구임을 경험한 것이다. 사탄은 틈을 좋아한다.

셋째, 소외된 이웃 사랑

매년 종려주일과 함께 한 주간 특별 새벽예배(특새)를 드린다. 성금요일에는 한 끼 금식해 가난한 이웃을 돕는 금식 헌금을 드린다. 우리 교회 목사님은 종일 굶으셨는데 그 모습에 더 은혜를 받았다. 지금도 전쟁과 지진과 기근과 전염병으로 신음하는 소외된 이웃이 지구촌 곳곳에 존재한다. 새벽마다 예수님 저들의 눈물을 닦아주세요. 기도가 끊이지 않는다. 

지난주 우리 교회는 우크라나이나 전쟁과 튀르키예와 시리아 지진 복구를 위한 특별헌금을 드렸다. 상상 외로 차고 넘쳐 금주에 총회로 전달한다고 한다. 우리 교회가 살아있으니 한국교회가 살아날 것이라는 소망을 갖게 된다.

왜 주님은 우리에게 종려나무를 높이 들어 흔들게 하셨을까? 우리 죄를 대신 지시고 예루살렘 푸른 언덕 위 십자가상에 죽으신 그 사랑을 잊지 말라는 것이다. 예수님을 향한 한 사람의 종려나무 신앙인으로 이웃을 사랑하며 호산나 다윗의 자손 예수 이름을 높이 부르라. 사망 권세를 이기고 부활 승리하게 하려 하심이 아닌가!

정건채 장로

<남서울대학교 건축학과 교수·동산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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