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의 미학] 고래심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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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길이는 아무리 생각을 고쳐 해보아도 언짢은 마음이 풀리지를 않았다. 하기야 언제는 아내 칭찬으로 왔을까마는 그래도 모처럼 아내의 수고를 덜어줄 양으로 김장배추를 사들여 놓았는데 이것이 첫마디부터인상을 팍 쓰면서 누가 사랬느냐 속지 않았느냐 하며 이러쿵 저러쿵 따발총처럼 쏘아대니 속이 있는 대로 뒤집히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영길이는 다시금 오늘 낮의 일을 되새기며 머리 속으로 하나 하나 따져보았다. 영길이는 지난밤 밤새도록 오한으로 시달려 한잠도 이루지를 못하다가 겨우 새벽이 되어서야 잠이 들어 아침 아홉시를 훌쩍 넘겼던 것이다. 웬만하면 회사는 빠지지 않으리라던 영길이는 몸도 아픈 데다가 시간마저 늦고 해서 하는 수 없이 집에서 쉬고 있었다.

애들은 학교에 가고 아내는 편물점으로 맡아 온 일감을 돌려주러 가고 없었다. 부자가 울렸다. 나가 보나마나 장사꾼일 것 같아 망설이는데 다시금 부자가 울렸다. “누구세요?” “배추 가지고 왔는데요.” “배추를 부탁했었나요. 저의 집사람이?” “아니에요. 배추 좀 사시라구요.” 영길이는 어안이 벙벙했다. 

“부탁해서 가지고 오신 줄로 알았다니까요….” “그렇게 되었다면 미안해요. 난 그러한 뜻은 아니었는데요.” 거의 60이 다 되어 보이는 안노인이 열 포기가 채 안돼 뵈는 배추가 담긴 광주리를 머리 위에 올리려고 두 손으로 잡았다. “한 포기에 얼마나 하는데요?” 따지고보면 틀린 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조금은 미안해서 한마디를 했다.

“천오백 원이에요. 이건 무공해 배추에요. 집에서 기른건데 맛이 아주 고소해요. 이것 보세요. 벌레 먹은 자리가 있지 않아요?” 안노인 말대로 손으로 가르키는 곳에 구멍이 숭숭 뚫린 배추잎이 보였다. “이거 싼 거예요. 지금 이 정도 크기면 시장에서는 이천 원이 훨씬 넘을 거예요. 애기엄마가 보면 참 잘 사셨다구 할거예요.” 

어차피 김장을 할 바에야 무공해에다 값도 싸니 금상첨화요, 일부러 시장까지 갈 필요가 없으니 이 얼마나 경제적으로 이득이냐는 마음이 들었다. 

이렇게 해서 흥정이 되었고 6만 원을 주어 거뜬히 김장배추를 마련한 것이었다. 그런데 아내는 하나에서 열까지 모두 못마땅하다는 트집이었다. “지금 이 추위에 배추 벌레가 어디 있다구 벌레가 먹었다는 게요? 그리고 배추포기도 그렇지 그게 무슨 천오백 원이나 돼요?” 

영길이는 마음이 상했다.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한숨이 크게 새나왔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하는 수 없지 회사 친구에게 말해서 가져가라고 할테니까….” 이 말에 아내는 입을 다물었다. 도로 가지고 가겠다는데야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음날 아침 온도가 영하로 곤두박질을 하자 방송은 바로 이때를 노리고 있었다는 듯이 껑충 뛰어 오른 배추값에 바닥은 동이 났다고 목에 힘을 주어 말하고 있었다. 전화가 걸려왔다. “배추 다른 분에게 얘기 했어요?” “그건 왜?” “그냥요. 안했으면 그냥 쓰려구요.” “왜 그게 비싸다면서? 그리고 그건 벌레 먹은 게 아니라면서? 여봐 지금 나도 방송을 들었는데 배추가 동이 나서 야단이라는데 내가 사기를 잘한거지 뭐가 어쩌구 저쩌구 그러는 게야 도대체!”

영걸이는 이 기회다 싶어 하고 싶었던 말을 단숨에 다 털어놓았다. “그래서요.” “여봐, 고래심줄이 뭔지 알아?” “고래심줄이라니요?”

영길이는 시치미를 뚝 떼려고 했으나 아내의 얼떨떨해 하는 말소리가 하도 우스워 그만 참을 수가 없어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고래심줄이구 뭐구 그렇게 해요.” 전화가 끝났다. 영길이는 수화기를 놓으면서도 웃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러면 그렇지! 아무리 고래심줄이라도 우길걸 우겨야지.’

원익환 장로

<남가좌교회 은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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