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과 지혜] 좌우명(座右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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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리좌(座), 오른우(右), 새길명(銘)의 좌우명(座右銘)은 자리의 우측에 새겨둔 말씀을 뜻한다. 교훈이 될 만한 말씀을 자리 가까이에 두고 자신의 인격과 삶을 갈고 닦는 이 좌우명은 중국 후한(後漢) 시대 학자이며 명필인 최원(崔瑗)의 것으로부터 유래한다. 최원의 스승인 채옹은 숭산 석실에 들어가서 30년 간 서도(書道)에 매진했는데, 드디어 득도해 영자(永)8법을 익혔고 당대 최고의 명필이 되었다. 채옹의 서체가 최원에게 전해졌고, 최원의 필법이 제자 장지에서 위부인, 왕희지에게 차례로 전수되었다. 

최원의 좌우명은 다음과 같은 글귀로 시작하고 있다. “남의 단점을 말하지 말고(無道人之短), 나의 장점을 자랑하지 말라(無說己之長), 남에게 베푼 것은 기억하지 말고(施人愼勿念), 은혜를 입은 것은 잊어버리지 말라(受施愼勿忘).” 

오늘을 사는 우리가 새겨들어야 할 좌우명이라고 생각한다. 한국교회에는 좌우명이 없다. 성장을 부추기고 독려하는 좌우명은 교회 안팎에 요란하게 걸려 있으나, 이 시대의 정신적 지주로서 사회에 영향을 주고, 교인들의 가슴을 울릴만한 좌우명은 보이지 않는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인가? 한국교회는 로버트 슐러의 현란한 언어에 취해 버렸다. “선구자, 신기록 수립자, 헌신적인 몽상가, 성화 된 기회주의자, 영화로운 도박꾼들” 같은 언어적 마술에 도취된 한국교회 목회에는 세상의 경영 논리가 판을 치고, 비즈니스 논리가 좌우명을 대신하고 있다. 

교회가 세상을 품는다고 문을 개방했지만, 오히려 교회는 세상의 문화에 동화되어 세속화되어 버린 느낌이다. 세속화된 교회는 경쟁심리, 영웅주의, 승부욕에 빠져서 커지고 많아지고 1등이 되고 최고가 되겠다는 비전의 노예가 되어 버렸다.

 세상이 머리 숙일만한 종교지도자로서의 감동적인 좌우명을 가지고 목회하고 살아가는 사람을 찾기 어려운 시대이다. 많아져야 하고 커져야 하고 재정이 늘어나야 한다는 것이 목회의 목적이고, 이 성과와 업적이 좋은 목회자를 판단하는 기준이라면 한국교회는 비참하다. 주님을 닮은 신앙 인격과 성직자로서의 숭고한 좌우명을 가진 사람이 존경받는 진정한 주님의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예수 믿는 특권이 무엇인가? 자족함을 배우는 것이다. 한국교회가 살길은 더 얻으려는 욕망에서 자유하여 내려놓는 자족함을 실천하는 것이다. 분에 넘치는 승부욕을 내려놓고, 영웅이 되려는 야심을 내려 놓고, 성공신화의 욕망을 내려놓아야 한다. 교회의 본질을 망각했던 망상에서 깨어나야 한다. 믿는다는 것이 무엇이고, 교회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거룩한 좌우명을 마음에 새겨야 할 때이다. 

문성모 목사

<전 서울장신대 총장•한국찬송가개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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