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쉼터]  체면 좀 지킵시다

Google+ LinkedIn Katalk +

자신이 쓰는 언어나 하는 행동이 예의나 규정에 어긋날 때 이에 대해 반성하고 잘못에 대해 용서를 비는 행위는 선진국이냐 혹은 후진국이냐에 있지 않고, 교육을 많이 받았느냐에 따르지 않는 것 같다. 특히 모르는 사람을 처음 대하는 자세는 국민성과는 상관없이, 개인의 성품이지만 그래도 선진국이냐 혹은 후진국이냐에 따라 차이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교육 수준에 따라 차이가 나는 경우를 우리는 분명하게 구별하고 있으며, 그러기에 이제는 경제적으로도 발전했고 특히나 교육 수준이 높은 우리나라의 국민성이 이렇게 저질이고 수준이 낮은 것에 개탄을 금할 수 없다. 이는 ‘양반은 얼어 죽어도 겻불은 안 쬔다’는 고고한 우리 백성이 언제부터 이렇게 나만을 생각하고 남의 눈치도 보지 않는 국민성을 지니게 되었는지 암울할 따름이다.  

예배시간에 늦게 도착했으면 남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 조심스럽게 몸을 낮추어 구석 자리에 앉는 것이 당연한 예의일진대, 구태여 앞자리로 떳떳하게 들어가는 바람에 분위기를 망치는 경우도 볼 수 있다. 이렇게 부끄럼을 안다는 자체가 사회생활을 하는 가장 기본적인 자세일진대 이를 망각하고, 자기 편할 대로 행동하는 사람을 보면서 ‘배워먹지 못한 사람’이라고 속으로 비웃기도 하지만, 이런 사람은 교육과는 상관없이 인성이 잘못된 사람일 뿐이다. 사실 외국에 가보면 외부 활동에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이 ‘감사합니다(Thank You) 그리고 실례합니다(Excuse Me)’인 것을 실감하게 된다. 이는 이전에 몰랐던 사람들과 단체 관광 여행을 가면, 대다수의 사람들이 외국사람과의 접촉에서 자연스럽게 이런 말을 쓰는 것을 경험하면서, ‘왜 외국에 나와서는 저렇게 잘하는 사람들이 한국 내에서는 길가다가 부딪쳐도 ‘미안합니다’라는 한마디 말도 없이 그냥 가 버리나?’라고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초등학교 6학년 첫 시간은 몹시 긴장되었다. 학교에서 가장 무섭다는 선생님이 담임이었으며, 그는 첫날부터 근엄했고 당연히 우리 모두가 긴장했으니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중학교에 입학하는 것이 우리들의 목표였기에 그것은 당연했다. 선생님은 필요한 말만 하면서 별로 웃지도 않았는데, 그의 진가가 나타난 것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여름방학을 앞두고 치러진 학력고사에서 우리 반이 꼴찌를 했다. 그날 종례시간에 화난 얼굴로 들어온 그는 우리에게 ‘우리 반이 꼴찌를 했다’는 사실을 말하면서 큰 소리로 꾸중을 했다. 우리는 모두 어쩔줄 모르는 표정이었다. 그런데 잠시 후에 “이 모든 책임은 공부를 잘 가르치지 못한 나의 책임이며, 그 벌을 받겠다”며 바지를 걷고 양말마저 벗은 후에 자신의 종아리를 책상위에 올리고 준비한 대나무자로 무자비하게 내려쳤다. 약간의 피까지 나는 현상에 우리 모두는 경악했으며, 교실은 적막에 쌓였다. 그 후에 우리는 모두 분발했으며, 엄청난 충격이 그 후에도 계속해서 우리들을 긴장시켜 졸업 때는 당연하게 우리 반이 전교에서 일등이었다. 그 당시에는 무섭기도 했지만, 자신이 책임지는 자세와 이를 단순히 우리의 잘못으로 여기지 않고 교육자인 자신이 벌을 받는다는 자세는, 그 후로 내가 살아가면서 결코 잊을 수 없는 인생의 큰 교육이 되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이렇게 책임지는 사람이 점점 사라지고 있으며, 자신이 잘못했음을 알면서도 결코 반성하지 않고 오히려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는 철면피한(鐵面皮漢)들이 늘어가고 있는 현실이 되었다. 

백형설 장로

<연동교회>

공유하기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