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람과 한국교회] 카자흐스탄에서의 기독교 선교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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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와 교회 개척 현황

1995년 자료에 의하면 1900년대에 목사나 전도사의 숫자는 카자흐족속 전 인구에  0명이었다. 단 하나의 교회도 없었고 선교사 숫자는 12명으로 67만8,156명당 1명꼴이었다. 중앙아시아 기독교인 박해가 더욱 심해지는 가운데 기독교 박해 35위의 카자흐스탄에서는 2011년부터 제정된 법으로 종교의 자유가 더욱 제한되고 2015년부터는 당국의 압박이 강화되고 있다. 등록되지 않은 교회가 모이는 것은 불법이기에 비밀리에 가정 예배로 주로 모이며 젊은 크리스천들이 카자흐스탄을 많이 떠났기 때문에 교인들의 평균 연령은 70세 정도가 된다. 이런 열악한 박해와 탄압이 환경에서 카자흐 담당 선교 기관은 현재 5개이다. 2019년 다양한 기독교 박해가 있었는데 그 중 기독교 문학을 밀반입한 혐의로 성도들이 체포되었고, 막시모프 목사의 경우 전 재산을 몰수당하고 징역 5년, 사모인 라리사는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 또 얼마 전 크리스천 10대 소녀가 3명의 총을 든 남자들에 의해 납치되는 사건이 있었지만, 소녀의 실종 신고를 받은 경찰은 크리스천이라는 이유만으로 사고 접수조차 서두르지 않았고 뒤늦게 찾은 소녀는 심한 협박에 시달려 납치가 아니라 자원했다고 진술하고 납치범을 따라가 지금은 행방조차 알 수 없어 가족과 교회의 안타까움을 사고 있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네스토리안들이 행한 노력을 배제한다면 1990년까지 카작인들 사이에는 어떠한 교회 개척 시도도 없었다. 1990년을 지나면서 개신교가 그곳에 본격적으로 선교를 시작한다. 1990년에 처음으로 외국인 사역자들이 카자흐스탄으로 들어왔고, 1991년에 카작 미국인 축제(Kazak-American People’s Festival)가 있었는데, 약 330명의 북미 신자들이 6월 21일-7월 6일까지 이 축제에 참여했다. 일부 카작인들이 복음에 대해 좀더 듣는데 관심을 보였다. 통역자들 사이에서 일부 회심자들이 보고되었고 조그만 교회가 시작되었다. 1992-93년에 첫 번째 카작 모임들이 알마타 외곽에서 시작되었고, 1993년에 신 ․ 구약에서 10권의 부분 성경이 간행되었다. 1994-95년에 카작인 신자들의 수가 100% 증가했고 1996년에 바울 서신의 모든 부분이 간행되었는데, 고린도후서 제외가 제외되었다. 1996-97년에 현지인 목사, 지도자가 출현했고, 1998년에 신약 전권과 구약 일부가 출판되었다.

현재 카자흐스탄의 선교 중심은 알마타이다. 1998년 수도가 아스타나로 옮겨가기 전까지 알마타는 카자흐스탄의 수도였다. 그래서 이곳에 많은 선교사가 집중되어 있다. 그 결과 알마타에 교회가 집중적으로 개척되었다. 알마타의 인구는 약 200만 정도 된다. 1992년 120만의 인구가 계속 유입되어 계속 증가 추세에 있다. 이곳에 세워진 교회만 하더라도 60개가 넘는다. 이곳에 교회가 집중된 것은 선교사들 대부분이 이곳에 머물러 있는 것도 이유가 되겠지만 많은 교단과 선교단체들이 중앙아시아와 카자흐스탄의 선교 거점을 이곳으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2023년 카자흐스탄의 라마단 기간은 3월 23일에 시작해 4월 20일에 끝난다. ‘오라자 아이트’는 4월 21일이며, 권능의 밤 ‘라일라 툴 카드르’는 4월 18일 밤이다. 그리고 3일간 지속되는 ‘쿠르반 아이트’의 첫날은 6월 28일이다. 언제나 이 기간이 카자흐 선교를 위한 기도가 집중되는 때이다.

소기천 박사

<장신대 성서신약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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