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의 미학] 동수야 힘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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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호는 깜짝 놀랐다. TV바둑에 정신이 팔려있는데 동수가 느닷없이 소파 위로 껑충 뛰어오르자마자 순호 등뒤로 파고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놈아! 할아버지가 깜짝 놀랬지 않아!” “동생 때려서 아빠에게 혼이 날까봐 도망쳐 온거예요.” 아내 말에 그제서야 우는 아이가 동생인 것을 알았다. 

“동수야, 너 할머니 말대로 동생 때리고 도망쳐 온거야?” 순호는 붙들고 놓지 않는 팔을 못이기는 척 하면서 타이르듯 말했다. “어린 동생을 때리면 되나?” “아니예요. 내껀데 안주니까 저래요.” “그랬어?”

순호는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내것인데 움켜쥐고 내놓지를 않으니까 한 대 쥐어박은게 틀림이 없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이때 버럭 지르는 애아범의 소리가 들려왔다. “너 거짓말! 그게 왜 네거야 동생껀데!” “아니에요 내껀데.” “네가 동생에게 주었던 게 아니야!” 어디까지나 위압적인 말투였다. 

순호는 그 옛날 어렸을 때가 생각났다. 부모님 두 분 모두 학교 선생님이셨기 때문에 가정교육이 무척 엄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형으로서 동생들을 보살펴야 한다는 일이었다. 동생들이 울거나 일을 저지르면 에누리없이 어머니에게 불려갔다. “왜 울려 동생을!” “울린 게 아니라 자기가 운거예요.” “까닭없이 왜 울어.” “모르겠어요 왜 우는지.” “왜 우는지 모르다니 형이 동생들을 잘 보살펴 주어야지 우는데 왜 우는지 모르다니.”

어머니는 경우가 어긋나면 두말없이 매를 들었다. 바지를 걷어올리고 종아리를 때렸고 맞는 장소는 툇마루 끝쪽으로 아예 정해져 있었다. 이러니 동생들에게 매사에 조심하라고 엄하게 할 수밖에 없었고 그러면 그럴수록 어머니의 매는 늘어만 갔다. 

“동수야 업자! 어서!” 순호는 등뒤로 머리를 쑤셔박고 있는 동수를 업고 일어섰다. “왜 그러세요. 아버지?” “무조건 형이라고 윽박지르지마! 내용을 자세히 알아보고 옳고 그른 것을 명확히 가린 다음 주의를 주어야지 그저 덮어놓고 큰애라고 몰아 야단치면 안돼.”

“지금 동수가 지프차 장난감 때문에 그러는데요 그건 동수가 동생에게 준 거거든요.” “그래도 그렇지.” “네?” 

그래도라니? 어떤 일에나 경우와 이치를 엄격히 따지시는 분이 동수에게 대해서만은 그래도 그렇지라니 할 말이 없었다. “주었다는게 애들은 그냥 좀 보라고 하는 마음에서 그러는 때가 많은거야.” “아주 준거라니까요. 아버지. 야! 동수야! 너 지프차 동생에게 준거지?” 

당장에 사실 여부를 따져서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다그쳐 물었다. “아니야 아버지! 내꺼야.” “글쎄 처음에는 네것이었는데 네가 동생에게 주었지 않아!”

순호와 동수는 놀이터로 나왔다. 좀전에 겁먹었던 표정은 말끔히 사라지고 미끄럼틀을 오르내리느라 정신이 없다. “할아버지! 올라와요!” 동수는 애들 틈에서 손을 흔들어대며 순호를 불러댔다.

“그래 올라 갈게 동수야!” 순호도 손을 흔들어 보이며 미끄럼틀로 올라갔다. 어느새 아파트 애들이 모여와서 이상한 동물이라도 구경하듯 순호를 지켜 보았다. “몇 십년 만에 올라선 미끄럼틀이냐.” 혼잣말처럼 중얼대며 순호는 두팔을 높이 치켜 들고 크게 숨을 들이켰다. 

“동수야 힘내!” 힘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는 표정으로 동수는 히죽 웃었다. “동수야 너 할아버지가 좋으냐?” “네! 좋아요.” 동수는 머리를 끄덕거리며 좋다고 했다. “나도 동수가 좋아!” 순호도 웃었다. 그러자 지켜보던 아파트 애들도 덩달아 따라 웃었다.

과부가 과부사정을 안다는 속담처럼 장남이라서 장남을 편드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자 순호는 더 참을 수가 없어 큰소리를 내어 웃었다.

원익환 장로

<남가좌교회 은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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