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의 회복] 무거운  죄짐

Google+ LinkedIn Katalk +

겟세마네에서 주님께서는 깊은 고뇌를 하셨다. 고민하고 슬퍼 하셨다. “나의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 제자들과 떨어져서 땅에 얼굴을 대시고 아버지께 크게 부르짖으며 세 번이나 되풀이해서 기도하셨다. 그렇게 많은 기적을 행하셨던 하나님의 전능하신 아들 주님께서 왜 그렇게 고민하고 동요하시는 모습인가! 죽기 위해 세상에 오셨으면서 죽음의 때가 다가왔을 때는 연약해지기 쉬운 우리 인간들처럼 되셨는가? 무슨 이유에서이신가?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님께서 인간적인 고민이고 슬픔이라는 주석을 읽은 적이 있다. 결코 아니라는 생각이다.

 예수님의 마음을 짓눌렀던 것은 이 세상의 죄라는 짐이었다. 세상 모두의 죄!  그것은 바로 주님에게 우리의 죄가 전가(轉嫁)된 것이다. 그 무거운 죄의 짐이 한 마리 희생양의 머리 위에 놓인 것처럼 주님 위에 놓여진 것이다. 그 짐이 얼마나 무거웠는지는 아무도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죄짐 맡은 우리 구주!

 오직 하나님만이 홀로 알고 계신다. ‘아무도 알 수 없는 주 그리스도만의 고통’(그리스 정교의 기도문)이시다.  이때의 그리스도는 순결하심과 하나님과 인간에 대한 완전한 사랑, 영광스러운 사건에 대한 확신과 동시에 정죄(定罪) 받은 영혼들이 겪어야 했던 것과 같은 고통을 겪으신 것이다.

 낮에 무슨 생각을 하다 보면 밤에 꿈이 꾸어지는 수도 있다. 빌라도의 아내가 꾸었던 꿈은 일반적인 감각 작용이 아니었다. 섭리(攝理, Providence, 하나님의 계획과 의도)이셨다.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 때문에 주님께서 괴로움을 당한 것이라고 칼빈은 주석했다. 그리스도를 정죄하기 전에 그의 무죄임을 이처럼 암시하게 하신 것도 그리스도께서 무고(誣告)하게 정죄 받은 거기에 우리의 죄에 대한 속량(贖良)이 돋보이도록 하시려는 뜻에서였다고 주경학자는 주석한다.

 아우성치는 무리들 앞에서 빌라도가 망설이는 것을 본다. 밤에 꿈으로 그의 아내를 놀라게 함으로써 하나님께서 그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무죄성을 보장하신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죽음에서 피하도록 하려는 뜻에서는 아니다. 무죄자의 죽음이며 속죄를 위해 넘겨졌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한 것이다

 빌라도는 그의 아내가 꿈을 꾼 후에 사람을 보내어 전했던 이상하고 신비한 꿈을 통한 경고를 거절했다. 자기 양심의 항의를 짓눌러 버렸다. 그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게’ 서기관, 제사장, 바리새인들에게 넘겨주었다. 행동할 용기가 없었다. 민중을 두려워했다. 조롱당하는 것을 염려했다. 평판이 나빠지는 것을 감당할 수 없었다. 인간을 숭배하는 것은 우상이다. 그들의 마음은 죽은 물고기처럼 조수(潮水)에 떠다니고 있는 것이다.

김용관 장로

<광주신안교회·한국수필문학가 협회 이사>

공유하기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