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 고아들의 벗, 사랑과 청빈의 성직자 황광은  목사 (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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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토피아, 보이스 타운 < 3> 

난지도 삼동 소년시 ④

하나님 축복 있길 믿고 최선 다할 뿐

끊임없이 불쌍한 사람에 생명 주는 것

결혼 후 YMCA 복귀·소년시 건설 준비

결혼 후 초인간적 봉사 할 수 있길 희망 

아주머님 귀가하셨는지요.

집에서는 좀더 있어 주는 것을 행복으로 생각하는 모양이나(아버님이), 약속한 2주일 안에 나오게 되도록 하겠고, 약제사 증명은 뜻대로 되지 않으면 그대로 두었다가 가지고 상경하도록 합시다.

풍운(風雲) 급(急)을 고하오나 하나님의 축복이 한국 백성에게 있을 줄 믿고, 우리는 순간순간마다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건강에 조심하고 앞으로의 일을 잘 생각하시기 바라며 붓을 놓겠습니다.

나는 30의 고개에서 가장 큰 이득을 얻었습니다. 그것은 내가 당신과 결혼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내 일생에 가장 큰 손실이 있을 것은 당신과 같이 오래 살아야 끊임없이 우리의 생명을 나누어서 불쌍한 사람에게 주는 것입니다.

주를 위해 우리는 일생 손해를 입읍시다. 나는 과거 30년이 행복했던 것보다 지금이 가장 행복하고, 또 앞으로 그대와 같이 걸어가며 고생도 하고 웃기도 할 것을 가장 행복하게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우스운 내 지금의 심경을 읽어 주시고, 같이 갑시다. 어디든지. 광은.

위의 편지를 통해서도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황광은은 결혼한지 한 달 뒤에 부산에서 서울에 상경했다. YMCA에 복귀하기 위해서였고, 난지도에 소년시를 건설하기 위해서였다.

서울 거리는 전쟁의 상처를 입어 완전히 폐허화했다. 종로에 있는 YMCA도 완전히 파괴되어 터만 남아 있었고, 그 자리에는 사무실과 교실 한 개뿐인 가건물이 서 있었다. 황광은은 거기서 윤락 여성 선도 사업과 아울러 가난한 집 아이들을 모아 가르치는 일에 착수하였다. 그 일을 하면서 난지도 소년시 건설을 준비하였다.

신혼 직후인 4월 29일에서 소년시 건설에 다짐하는 7월 7일까지의 일기에서 몇 대목 뽑아 옮겨 본다.

4월 29일 

밤이 밝도록 얘기해도 모자른다. 그러나 대체 이런 행복을 누려도 괜찮은가 모르겠다.

5월 1일

꿈이다. 어렴풋이 꿈에 잠겨 날이 새는 줄도 모르겠다. 아내라는 것이 그렇게도 다정스러운 것이라는 것을 예상 못 했던 것이다. 이런 세계가 있으면 있다고 미리 좀 알려줬으면 좋지 않아? 그러나 그렇게 이즈러질 듯이 행복함을 느끼는 순간순간도 앞길을 생각하고, 또 앞으로 불우한 형제들의 친구될 것을 의논하고 또 절제했다. 이렇게 사업을 의논할 수 있는 아내를 만나게 된 것만도 나는 행복하다. 앞으로 올 여러 가지의 억울과 불행을 얘기하면서도 행복한 것은 어쩌리.

5월 4일

비오는 부둣가에서 아내와 헤어져 제주로 향했다. 물결이 심하고 온종일 착잡한 생각에 싸였던 것이다. 결혼한 지 한 주일도 못되어 아내를 두고 가는 길은?

5월 5일

아동시를 만든지 만 1년. 모든 반대를 물리치고 만들어 돌을 맞으니 감개무량하다. 그러나 이것을 나는 객인(客人)의 입장에서 바라보게 되니 더욱 그렇다. 사라가 성전을 짓고 낙성식을 보지 않고 떠난다는 이야기다.

5월 6일

원장님의 노여움은 풀리지 않았다. 물론 계획적인 노여움이지만 할 수 없다. 난 나대로 생각이 있고 또 인제 나의 길을 가야 할 것이 아닌가. 단지 어린 형제들과 약속했던 모든 일이 눈앞에 선하며, 또 나를 쳐다보고 눈물짓는 어린이들을 두고 떠난 생각을 하니 서럽다. 그러나 앞날 다시 만날 때는 더욱 참으로 대하여 만날 것을 기대한다.

5월 9일

역사는 발자취도 없이 가고 있다. 어제 그가 섰던 자리에 내가 서고, 오늘 내가 섰던 자리에 내일 그가 설 것이다.

5월 11일

가족들을 만나니 역시 유혹받을만치 행복스러운 분위기다. 이러길래 가족을 버리고 예수를 따른다는 것이 힘든 일일 것이다.

5월 13일

날 만나서 축하한다고 하는 사람은 밉다. 지금이 어느 땐데, 또 남의 속도 모르고 덮어놓고 축하가 뭐야!

5월 14일

고아원 두어 곳을 방문했다. 앞으로 할 일을 생각해서 시간만 있으면 이런 견학은 필요하다. 10년을 눈 감고 일했으니 앞으로 10년은 눈을 떠야겠다.

5월 15일

아내는 내가 하자는 대로 한다. 나는 아내가 좋아하는 일만 하고 싶다. 아내가 내 죽음의 골짜기에서 나의 손을 붙잡겠는지? 내가 아내의 곤경을 꽤 돌봐줄 수 있겠는지. 무아경(無我境)에 둘이서 풍덩 뛰어들었으면 좋겠는데 아내가 말을 들을까?

5월 17일

모두 결혼하면 생각이 달라진다는데 정말 그런 걸까? 달라진다는 건 물욕이 생긴다는 것인데 우리에게 생길까? 지금의 아내의 마음은 나보다 낫다.

5월 18일

주일날 총무님과 사모님과 우리 부부가 뒷산에 올라가서 예배 보고 또 얘기도 하고 돌아왔다. 퍽 시원하고도 서느러운 그리고 기억할 만한 등산이었다.

5월 19일

아내와 또 이별할 날이 가까워 온다. 1주일 가까이 지내고는 또 헤어져야 하는 것은 운명의 장난이며 하나님의 섭리이다. 이것은 일부러 만들어서 당하는 고통일 것이다. 그러나 보라, 이것이 무의미한 것일까? 우리는 가시밭길을 택했다. 어디 늘 찢기기만 할 것인가?

5월 23일

차 안에서 온종일 밖을 내다봤다. 푸른 언덕, 사랑스런 골짜기, 거기에 싸움이 벌어졌던 강산들이다.

5월 24일

YMCA로 돌아오다! 1년 5개월의 봉사는 끝나고(보육원에서의) 얻은 것이 무엇인가. 많은 욕과 환멸과 그리고 사랑할 만한 아내이다.

5월 25일

영락교회에 출석했다. 큰 교회다. 굉장한 사람이다. 그러나 나는 적은 교회에 가야겠다. 큰 교회에는 큰 대로 세력이 생기는 것 같다.

5월 26일

결혼 1개월째다. 결혼하고 곧 헤어져 사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한다. 그러나 모두 싸움하러 나가고 모두 슬픈데 어찌 나만 행복한 결혼생활을 할 수 있으리.

6월 10일

나라고 해서 아내를 사랑하기 때문에 내 가정 하나를 위해 살지 말라는 법은 어디 있는가.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신앙이 문제다. 나는 나대로 결혼한 것을 절대로 후회하지 않을 것이다. 유선이가 행여나 신체의 고장으로 혹은 정신적 타격으로 이때까지의 주장을 버리고 제2의 생활을 원하더라도 나는 그와 같이 걸어야 하고, 내가 타락해도 그가 나를 끄집어내줄 것만 같다. 모든 것은 주님께 맡긴 일, 그리고 어거스틴이 간 길이 혼자 간 길이라면 나는 유선이와 같이 가겠다는 것, 남이 끊어 버리고 돌아서는 데서 거룩해졌다면 나는 같이 가며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 보겠다는 것. 남이, 아니 나도, 여자에게서 사업의 도수가 떨어졌다면 나는 결혼함으로써부터 초인간적 봉사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을 나타내고 싶다. 하나님은 이같이 인간의 친구가 되려는 나를 제하시지는 않을 것이다.

7월 7일

난지도에 유선이와 같이 갔다. 모든 나무는 자라고 있었다. 유선이가 퍽 좋아했다.

보이스 타운이 여기 서게 될 것이다!

김희보 목사

· ‘人間 황광은’ 저자

· 전 장신대 학장

· 전 한국기독공보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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