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록장편소설] 큰 별(星)이 지다… 춘원의 마지막 길 벽초 홍명희와 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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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주 ‘사릉’에서 춘원 아버지와 어린 시절, 몇 해를 함께 살았던 막내 딸 정화는 몇 년 전에 귀국해서 이런 말을 남기고 쓸쓸히 미국으로 돌아 간 바 있다.

“아버지 춘원은 진심으로 친일로 조국을 배반할 위인이 절대 아니라고… 아버지는 누구보다 조국을 사랑하였고 우리가족을 사랑했다라고…. 그리고 자신의 문학에 최고의 긍지를 가지고 자신의 작품을 너무나 사랑했다라고….

오늘도 아버지는 저 북녘 땅 납북자 묘역에서 조국의 하늘을 바라보며 자신의 지난날을 반추하며 무한히 분출되는 자신의 작품 세계의 이야기들을 원고지에 옮기고 있으리라고….

정화야! 앞으로 살아가면서 외롭고 괴로울 땐, 이 노래(찬송가 338장)를 크게 불러라! 하면서 나에게 성경책과 함께 내 등을 쓰다듬어 주시던 아버지의 인자한 모습이 오늘도 내 눈앞에 어른거리고 있어요! 정말 아버지가 그립네요라고 말했다.

먼 훗날 나는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외롭고 괴로울 땐, 아버님의 당부대로 늘 이 찬송가를 불렀습니다. 아버지 춘원의 사랑을 생각하며 이 찬송가를 부르면 저절로 힘이 나고 용기가 생겼습니다. 

나는 요즘도 아버지가 보고 싶으면 이 찬송가를 우리 아이들과 같이 힘차게 부른답니다.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나/내 일생 소원은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내 고생하는 것 옛 야곱이 돌베게 베고 잠 같습니다./꿈에도 소원이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천성에 가는 길 험하여도 생명길 되나니 은혜로다/천사 날 부르니 늘 찬송하며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야곱이 잠깨어 일어난 후 돌단을 쌓은 것 본받아서/숨질 때 되도록 늘 찬송하면서 주께 더 나가기 원합니다. 아멘

세월이 훌쩍 가서 이젠 팔순이 더 된 춘원의 막내 딸, 이정화 박사의 목소리가 오늘은 더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저는 언젠가는 이 나라 역사가 그 당시 우리 아버지 춘원의 진심을 제대로 알아 줄 날이 꼭 올 것이라는 믿음과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습니다.” 이정화 박사는 조국 대한민국의 인천공항, 비행기 트림에 힘차게 오르면서 그녀의 오른손을 힘차게 흔들고 있었다.

아버지는 과연 매국노 인가?

아! 그립다. 아버지가. ‘사랑하는 내 딸아, 살면서 외롭고 괴로울 땐, 이 찬송가를 불러라!’ 하시던 내 아버지가 오늘은 더욱 그립다.

남양주 ‘사릉’집에서 아버지는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자신의 가슴을 쥐어뜯으며 회한의 삶을 살았다.

‘반민특위’에서 온갖 고초를 당하고 출옥해서 민족의 배신자로 혼자 울면서 살아야만 했다. 잠도 편안히 자면 안 된다는 자책감에서 당신은 밤마다 딱딱하고 차가운 돌베개를 베고 잤다. 사람들은 아버지 춘원을 뻔뻔스럽고 양심 없는 인간으로 질책했지만, 내 아버지는 그 누구보다 체면과 위신과 자존감이 강했던 분이다.

그래서 아버지는 밤만 되면 더 괴로워했다. 어둠이 싫었던 거죠. 당신은 풍금을 치고 나는 독창으로 아버지 십팔번인 찬송가 338장 ‘내 주를 가까이 하게 함은’을 큰 소리로 불러댔죠. 야곱의 돌베개를 베고 자면서도 아버지는 이 찬송가를 흥얼거렸어요.

그러던 어느 날로 기억해요. 이때 내 나이 열 살이었어요. “아빠! 왜 밤만 되면 이 돌베개를 베고 자?” “응, 그럴 일 있단다.” “왜 그러는데? 힘들게….” “아빠가 지난 날, 잘못한 게 많아, 용서 받을까 해서 그렇단다.” “그렇게 하면 아빠를 용서해 준대?” 

그러면서 딸은 철난 아이처럼 아버지 볼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조그만한 손등으로 닦아 주곤 했다.

채수정

 (본명 채학철 장로)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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