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계이슈] 한국교회 목사 열전 (3) 평양  대부흥 운동의 주역 길선주 목사 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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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순절 성령 운동처럼 성령 임재하심 함께 체험

‘기도·말씀·전도의 사람’, 평생 성경읽고 연구해

길선주 장로는 “맛을 잃어 말라빠진 사람들아!”하고 외치며 설교했다. 회개를 촉구하는 길선주 장로의 외침에 교인들은 모두 회개하는 심령이 됐다. 모두가 오순절 성령 운동에서처럼 성령의 임재하심을 체험했다. 한 사람씩 일어나 죄를 고백했다. 회개한 사람은 고꾸라지고 넘어졌고, 하나님께 간절히 용서를 구했다. 이런 성령의 임재에서 하나님은 그들의 죄 용서하기를 거절하지 않으셨다. 모든 사람이 죄를 회개하고 평화를 얻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이 사람들의 죄는 용서받을 수 없는 것이었다. 이로써 그들은 모든 사람은 죄인이고, 오직 예수만이 흠 없고 죄 없으신 분임을 깨달았다. 성령의 역사는 놀랍고 일방적이었으며, 장대현교회에서 시작되어 이는 전국으로 퍼졌다. 길선주 장로의 복음 전도 사역은 1907년 성령의 불길이 평양교회에 임한 때부터 본격화 됐다. 성령의 불길은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성령이 임하기 전에는 신자들의 생활이 자유하지 못하고 거리감이 있었다. 아직 죄와 악습의 잔재가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 모든 사람이 이 대부흥의 역사를 통해 죄를 청산했다. 강단 아래는 꼬꾸라져 죄를 자복하는 선교사, 기절한 신사와 강도, 불치병을 고친 자가 가득했다. 길선주 장로가 서는 곳마다 기적이 나타났다. 그 후 3년 동안 전국적으로 대부흥 운동이 이어졌다. 이것은 한국교회 역사상 획기적이었다. 이때부터 교회는 진실한 봉사자가 되어 크고 작은 민족적 수난에 앞장서서 한국 사회를 이끌었다. 

1907년 6월 10일 평양신학교 제1회 졸업식이 장대현교회 뜰에서 거행됐다. 대한예수교장로회 제1회 독노회에서 길선주(40, 평양), 양전백(39, 구성), 서경조(58, 의주), 한석진(41, 의주), 송인서(40, 평양), 방기창(58, 평양), 이기풍(40, 평양) 등 7명이 한국 최초로 목사 안수를 받았다. 한국교회의 부흥이 시작된 장대현교회에서 길선주 장로가 목사 안수를 받는 것을 본 교인들은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길선주 목사에게는 ‘한국 기독교의 아버지’, ‘한국의 사도 바울’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그러나 길선주 목사는 자만하지 않았다. 그에게 이 모든 일은 하나님의 은혜였다. 길선주 목사는 기도의 사람이었다. 그리고 말씀의 사람이었다. 구약성경 30독, 신약성경 100독, 요한계시록 1만 독 등 평생  성경을 읽고 연구했다. 그는 또 전도의 사람이었다. 길과 집에서 예수를 전했고 평생 가족과 친척, 친구, 이웃, 다른 종교인에게 전도했다. 

방은덕 순경은 범인을 잡으려고 길선주 조사가 인도하는 집회에 참석했다가 자신의 죄를 회개했다. 김덕화 스님은 기독교에서 흠을 찾아내려고 길선주 목사의 설교를 듣다가 회심하고 전도자가 됐다. 한 가톨릭 신부도 길선주 목사의 집회에서 은혜를 받아 구원의 진리를 믿고 기독교인이 됐다. 유교에 빠졌던 부모를 전도하고, 불신 아내와 자녀들을 복음의 일꾼으로 세운 길선주 목사의 전도는 열정과 헌신이었다. 길선주 목사가 전도한 이들 중 다수가 교회 목사와 지도자가 됐고, 주일이 되면 평양은 상거래를 하기 어려울 만큼 한산했다.

이길함 선교사는 이때를 이렇게 회상한다. “우리는 모두 뭔가 임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사람들이 연이어 자리에서 일어나 자기의 죄를 고백하면서 울기도 하고 거꾸러지기도 했다. 새벽 2시까지 회개와 울음과 기도가 계속되었다.” 이러한 성령의 역사는 ‘평양의 오순절’ 역사였으며, 그 후 지방에서도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 한국의 초기 교회는 튼튼한 반석 위에 서게 되었다.  

이승하 목사<해방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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