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이제는 우리가 일어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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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들의 순교 이야기와 우리의 자세

지난 9월 25일 오전 10시, 제108회 총회 임원들의 시무식이 양화진의 선교사 묘원에서 신임총회장의 말씀 선포로 시작되었다. 순교자들의 신앙과 헌신, 그들의 희생과 순교 정신을 이어받아 한국교회와 세상을 섬기는 종들이 되자는 다짐의 시간을 가졌다. 예배를 마친 후 언더우드(Horace G, Underwood) 선교사와 “만일 나에게 천 개의 생명이 있다면 이 모든 것을 모두 조선을 위해 바치겠다”는 켄드릭(Ruby R. Kendrik)의 묘역을 방문하였다. 특별히 총회 임원들과 산하단체 기관장들과 대표들은 한국 선교사로 사역 중 순교함으로 최초로 양화진 묘소에 안장된 미국 북장로교 파송 헤론의 묘역를 둘러 보았다. 매우 의미 있는 일정으로 평가한 것은 한국교회는 이들 선교사들의 순교와 희생의 터 위에 세워졌고, 성장하였기 때문이다. 한국교회의 초기 선교사들은 대부분 이 땅에서 순교하거나 순직하였다. 1866년 7월, 대동강변에서 미국 상선 제너럴셔먼호를 타고 왔던 영국 선교사 토마스(Robert J. Thomas) 선교사의 순교로부터 시작하여 1890년 4월에는 호주에서 한국에 온 데이비스(Henry Davies) 선교사가 부산에서 과로와 폐렴, 천연두로 순교하였고, 1890년 7월에는 서울 장안에 창궐한 전염병을 치료하다가 과로와 함께 자신이 이질에 감염이 되어 순교한 분이 바로 헤론(John W. Heron, M.D.) 선교사이다.

  헤론 선교사는 테네시주립대학을 수석으로 졸업한 인재이다, 졸업식장에서 총장으로부터 정식으로 의사와 교수의 직을 제안받았으나, 아직도 저 동쪽 나라에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는 조선으로 가겠다고 뜻을 밝히며 주어진 교수직을 거절하였다. 1885년 6월에 한국에 도착한 헤론은 미국 북장로교회가 직접 한국 선교사로 파송한 첫 평신도 선교사이다. 물론 미국 북장로교 파송 알렌 선교사가 1884년 9월에 먼저 한국에 도착하여 있었지만, 본래 알렌의 파송국은 중국이었다. 1890년 여름은 유난히 더웠다. 그래서 헤론은 아내와 딸을 다른 선교사들이 피서 중인 남한산성으로 데려다 두고 서울 장안으로 들어와 환자들을 치료하였던 것이다. 헤론의 서거 소식을 들은 고종황제는 미국인의 전통에 따라 제중원 뒤뜰에 묘지를 삼으려 하였으나 조선의 고관들은 양귀신 운운하며 반대하므로, 오늘의 양화진을 매장지로 직접 하사하게 되어 헤론이 양화진묘소에 처음으로 안장된 선교사가 되었다. 

 더욱 기가 막히는 선교사 순교의 이야기는 1895년 6월, 캐나다 선교사인 맥켄지(W. J. McKenzie)이다. 후원자가 없어 친구들에게 배 삯을 빌려서 한국에 도착한 맥켄지는 언더우드 목사의 소개로 황해도 솔내(松川)에서 사역하였다. 평소 된장국과 시래기국으로 끼니를 이어가던 맥캔지에게 언더우드가 성탄 선물로 케이크를 보냈지만 고향 생각이 날까 염려하며 교인들에게 나누어주었던 맥캔지는 결국 영양실조로 인한 정신분열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이 소식을 들은 캐나다 장로교회가 조선선교를 위한 선교부가 조직된 것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1900년 순교한 길포드 선교사 부부(Daniel L. Gifford, Mary H. Gifford)의 이야기이다. 경기도 지역을 순회하던 남편이 일사병으로 순교하자 충격을 받은 부인도 이어서 세상을 떠난 것이다. 1885년 부활절 아침에 도착한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목사님도 마찬가지이다. 아펜젤러(H. G. Appenzeller) 선교사는 1902년 목포 앞바다에서 돌아가셨다. 수영을 잘하는 아펜젤러는 물에 빠진 한 청년을 구하고 또 다른 청년을 구조하러 들어갔다가 다시는 뵐 수가 없게 되었고, 언더우드 목사님은 과로로 인한 건강 악화로 1916년 미국에 건너가서 치료하며 요양 중에 순직하셨다. 현재 양화진 묘소에는 수백 명의 선교사가 잠들어 있다.  

  오늘의 한국교회를 걱정하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분명하고 확실한 것은 한국교회는 선교사들의 피로 세워진 교회라는 것이다. 이들의 기도와 헌신과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있다. 그러므로 이제는 우리가 일어서야 한다. 과거가 없는 현재가 없고, 현재가 없는 미래가 없다. 다음 세대에 대한 염려만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주여! 지금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언더우드가 처음 한국에 도착하여 기도하였던 첫 문장이다. 우리의 미래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선교사들은 보이지 않는 조선의 미래를 위하여 온 몸을 던졌기에 오늘의 우리가 있다면, 이제 한국교회의 미래는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가? 너무나 자명하다.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아야 한다. 순교적인 결단으로 미래 세대를 위한 선교를 결심한다면 하나님은 분명히 우리가 감당할 희생과 헌신과 봉사의 길을 열어주실 것이다.

손윤탁 목사

<남대문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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