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록장편소설] 춘원의 문학과 사상, 그리고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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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중이 시비조로 물었던 불교와 반민족의 문제는 결코 핵심이 될 수는 없었다. 그것이 종교와 무슨 관계가 있겠는가? 불교도의 한용운은 위대한 독립운동가가 아니었던가? 괴롭고 어려울 때 불교도들이 의지하고 찾는 관세음보살이나 기독교의 성경은 이런 의미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춘원은 해방 후 반민법으로 그의 지난 날 친일 문제로 고민하고 있을 때, 6촌 동생 운하 스님 이학수 교장의 배려로 봉선사에 머물고 아침, 저녁으로 염불하는 불교인이었다.

그의 후기작품인 돌베개 속에서 그 당시의 생활을 잘 엿볼 수 있다. 1970년대 북한을 방문했던 춘원의 아들 이영근 교수가 쓴 글에서 아버지는 돌아가실 때에도 불교도이셨을 것이라고 말한 것을 우리는 기억한다.

그의 유일한 기념비가 현재 봉선사 입구에 세워져 있는 것도 이러한 춘원의 말기의 생활과 결코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춘원이 어렸을 때부터 특히 어려울 때면, 그의 곁에는 항상 그의 6촌 동갑 동생인 운허 이학수가 있었다.

이학수는 춘원의 어릴 적의 친구이며, 함께 한문을 배운 동문이었다. 춘원이 삶에 지쳐 있을 때, 춘원이 정신적으로 의지할 수 있는 곳이었고, 도움을 받을 수 있었던 곳이다.

봉선사 내의 광동중학교 교사 시절이나, 그가 대한민국을 떠난 후 봉선사의 입구에 있는 춘원기념비 등은 모두 운허 이학수가 춘원을 위해 배려한 흔적이라 할 수 있다.

춘원과 불교와의 관계는 그처럼 험난한 삶의 과정을 더듬어보면 그리 큰 의문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춘원연구학회의 빛나는 업적에 갈채를 보내다

이번에 춘원연구학회는 정말 엄청난 일을 해냈다. 다름아닌 춘원이 지금까지 남긴 모든 저작물들을 총망라한 ‘춘원 이광수 전집’ 35권을 발간(2020년 5월)하고 있다. 

그야말로 춘원 문학사에 족히 빛나는 업적이 아닐 수 없다.

지면을 통해 ‘춘원이광수전집발간위원회(위원장 송현호)’에 뜨거운 위로와 갈채를 보낸다. 

지난 날 삼중당본 ‘이광수전집’(1962)과 우신사본 ‘이광수전집’(1979)에는 춘원의 많은 작품이 누락되어 있었고, 또 현대어와 거리가 먼 세로쓰기로 조판하여 현대인들이 읽기에는 여러 가지로 불편했었는데, 이번에 ‘춘원연구학회’는 이 모든 것을 말끔히 정리, 해결해 주었다 한다.

여기까지 오는데 ‘춘원연구학회’에 얼마나 어려운 일들이 많았을까를 생각하면 저절로 존경스러워진다.

그러나 학회는 이 모든 만남을 이기고 ‘춘원이광수전집’ 완간을 이끌어 냈다. 얼마나 놀라운 일인지 모르겠다. 다시 한번 그 노고에 감사와 경하를 드린다.

춘원학회는 이번 발간작업을 통해 확실한 자리매김을 해 두었다. 

해방 후 춘원은 자신의 과오를 반성하지 않고, 자신은 민족을 위해 친일을 했고, 민족을 위해 자기희생을 했노라고 했다. 

이러한 자신의 진심은 멋 훗날 이 나라 역사가 그 진실을 증명해줄 것이라 해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질타를 받았다.

채수정

 (본명 채학철 장로)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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