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참된 치유, 참된 부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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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회 총회가 순조롭게 출범된 것을 기뻐한다. 총회 장소로 인한 심각한 갈등으로 인해 여러 가지 불행한 예측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총회가 은혜중에 평안히 잘 마치게 된 것, 하나님의 은혜요 우리 한국교회와 우리 총회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배려라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주여, 치유하게 하소서’라고 정한 총회 주제 역시 시의적절하게 정해졌고 이를 위한 총회 관계자 여러분들의 노력에도 감사한다. 바라기는 총회 임원들을 비롯한 전국교회가 함께 같은 마음으로 교회를 섬겨 나라와 민족 그리고 우리 교회에 참된 치유의 역사가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그리고 총회 주제가 구호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 실현을 위해 여러 계획들을 발표하고 실천하고 대처해 나가는 임원들의 발 빠른 시도 역시 기대 수준을 높여 준다.

그런데, 지금 우리 총회가 추진하고 있는 이 ‘치유와 부흥’에 대해서는 좀 더 진지할 필요가 있다. 총회가 추진하고 있는 치유와 부흥이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좀 더 명확한 개념 설정이 필요하고 또 무엇을 어떻게 치유한다는 것인지에 대하여도 바른 설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치유가 어려운 삶의 현장에서 받은 성도들의 ‘심리적, 정서적 상처’를 치유한다는 말인지, 아니면 신뢰를 잃어버려 생명의 능력이 약화된 한국교회를 치유한다는 말인지, 여러 가지 갈등으로 상처난 교회나 노회 그리고 총회를 치유한다는 말인지 분명한 개념 설정이나 설명이 필요할 것 같다. 그리고 부흥이라는 것 역시 단순히 교회의 양적 부흥과 성장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기를 바란다. 언뜻 들리기는 그리고 각종 계획들을 보면 이 치유가 상당히 ‘심리적 정서적’ 치유만을 의미하고 부흥 역시 코로나로 인해, 사회적 신뢰 추락과 영향력 감소로 인해 줄어든 교회를 의식한 구호가 아닌지, ‘상한 심령의 치유’가 여러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지만 책임 있는 지도자들의 치유에 대한 강의와 프로그램들에서 제시되는 방법들을 보면 상당히 ‘상처받은 마음’ 곧 ‘심리적 정서적 치유’에 기울어지고 있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 곧 너무 사회과학적으로만 접근하는 것 같다는 우려이다. 정말 중요한 치유는 근원적인 치유, 곧 인간의 죄의 문제 해결이라는 말이다. 죄에서 자유가 진정한 치유이다. 죄의 문제에 대한 치유는 결과적으로 상처 받은 심리, 정서적 치유를 가져오는 것이지만 근본적인 영적 접근이 아닌 단순한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사회과학적 접근이라면 그 실현 가능성을 신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리고 치유의 방법에서도 그렇다. 대중 집회나 부흥운동 소위 ‘운동’으로 가능할는지? 영적 치유는 지극히 개인적인 영적 변화를 필요로 하는 것이기에 ‘교회의 바로 됨’을 통하여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교회의 사회적 신뢰 회복이나 이미지 개선 그리고 교회 부흥의 문제도 그렇다. 필자는 이를 위한 노력에 대하여도 진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교회가 세상과 담을 쌓아서는 안 되지만 세상에 영합해서도 안 된다. 세상이 원하는 어떤 ‘운동’으로 교회를 회복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철저히 교회의 영적 변화가 필요하며 세상의 평판을 너무 의식하지 말고 우리길을 당당히 걸어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본다. 예수님도 칭찬받지 못한 세상으로부터의 칭찬을 교회가 받으려는 욕심을 버리고 가야 할 길, 해야 할 일을 묵묵히 감당해 나가면 좋겠다. 물론 세상의 일반적인 윤리나 가치에도 미치지 못할 수준에 떨어져 받는 비난이나 실망에 대해서는 총회 자복하여야 하지만 그것도 세상의 칭찬을 의식해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 바로서기 위함이어야 한다. 

“주여, 치유하게 하소서” 시의적절 하다. 그렇다. 우리에게 치유가 필요하다. 구호대로 하나님이 치유해 주셔야 한다. 이번 회기 동안에 우리 교회 모두가 영적인 변화를 통해 온전히 치유되고 영적 부흥이 일어나기를 바란다. 

이만규 목사

<신양교회 원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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