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광장] 시험과 시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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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에서 50만 명에 달하는 젊은이들이 11월 중순 대학수학능력시험, 줄여서 ‘수능’을 치르고 이제 쉬고들 있을 것이다. 10대 후반, 20세 전후의 남녀 학생들이 국가가 시행하는 이 시험에 얼마나 전심전력 매어 달리는지 측은하기까지 하다. 

수험생들을 골탕먹이는 소위 킬러문항들이 대통령의 지시로 금년에는 사라졌다고는 하지만 문제들이 더 어려워졌다는 평가도 있었다. 이 시험의 결과로 각자의 머리 속에 담긴 ‘수학(修學)능력’에 등급이 매겨지고 이를 바탕으로 각 대학이 신입생을 선발하게 되니 우리나라처럼 대학교육이 중시되는 사회에서 단 하루 여덟 시간 치르는 이 수능의 중요성은 해를 거듭해도 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사람의 일생을 두고 볼 때 시험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대학을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하기 위해 취직시험을 치르고 또 각종 자격시험에 합격해야 하는 경우들도 많지만 인생의 전 과정에서 더 많은 어려운 시험들을 통과해야만 한다. 앞의 시험이 영어로 말하자면 Test의 뜻이라면 다음에 오는 시험은 시련(Trial)이나 유혹(Temptation)의 뜻이다. 이들이 우리말에서 한가지로 시험이라 불리우는 데는 셋을 연결하는 각별한 의미가 담겨있다고 생각된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야고보서 1장 2절)는 말씀 가운데 시험은 시련과 유혹을 뜻하는데 이를 편의상 ‘시험2’와 ‘시험3’으로 표기해 본다. 

수능시험을 앞두고 교회마다 주일예배에서나 새벽기도회 모임에서 교인 가정의 수험생들이 시험(1)을 실수함이 없이 잘 보도록 도와주시라고 열심히 기도한다. 그러나 이런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고 시험을 잘 보고 못 보고는 거의 전적으로 수험생 자신이 얼마나 열심히 준비하고 공부했나에 달려있다. 학생이 뜻하지 않은 사고를 당하거나 병을 앓게 되지 않도록 보호해 주시기를 바라는 간구에 그치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이 살아가면서 경험하게 되는 시험2나 시험3에서 우리는 자신의 의지와 능력의 한계를 깨닫게 된다. 시험1의 단계에서 우리는 학교와 선생님과 교과서 그리고 기껏해야 학원 몇 군데를 포함하는 울타리 안에서 최선의 결과에 이르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라면 시험2는 사회라는 복잡한 환경과 제도라는 거대한 장벽이 만들어 내는 문제들을 만나 싸워야 한다. 시험3의 단계에서는 우리와 만나 관계를 맺는 모든 사람들이 문제를 일으키는 주역이 된다. 

그들은 감성적인 사랑과, 탐욕의 대상이 되는 물질과 권력으로 우리 앞에 나타나서 ‘인생의 성공’이라는 화려한 목표를 제시하면서 삶의 방향을 빗나가게 한다. 이 시험3이 가장 어렵다고 하는 것은 물리치기 힘든 달콤함이 거기에 있기 때문이다. 

시험2를 당할 때 우리는 싸움에서 이길 힘을 주시라고 기도하고 하나하나 이겨 나가면서 하나님께 감사한다. 시험3에서 우리는 먼저 우리에게 뻗어진 그 손을 잡아야 하는지 물리쳐야 하는지를 기도하며 물어야 하고 드디어 유혹에서 벗어났을 때 그런 지혜와 용기를 주심을 감사해야 한다. 야고보 사도는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므로 이를 기뻐하라고 하셨다. 

오늘의 세상을 살면서 수능을 치른 젊은이들이든 날마다 여러가지 모양의 시련을 만나 숨가쁘게 싸워 나가는 직업인이든 모두 시험1, 2, 3의 각 대목에서 하나님께 구할 것은 오로지 인내의 힘이요 이것이 그들 인생에서 기쁨의 원천이 된다. 

김명식 장로

• 소망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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