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2023년을 보내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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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이 저물어 가고 있다. 벌써 거리에는 성급하게 성탄 장식이 화려한 불빛을 자랑하고 카페에서는 캐럴이 흘러 넘친다. 어느새 연말연시가 성큼 다가왔음을 느낀다. 한 장 남은 달력을 보며 한 해를 뒤돌아 본다. 그런데 생각해 보자. 연말이 내게 다가온 것일까? 내가 연말을 향해 다가가는 것일까? 연말이 미래에서 출발하여 내게로 오는 것일까? 아니면 미래인 연말을 향하여 내가 움직이는 것일까? 어제 오늘 내일 해가 동쪽에서 뜨고 서쪽으로 지는 것은 변하지 않는다. 따라서 12월이라고 해서 11월과 달라질 것은 없다. 우리는 여전히 아침에 일어나고 하루를 마치고 잠자리에 들 것이다. 그런데 왜 우리는 12월이 지나갈수록 여러 가지 상념에 빠지게 되는가? 어제나 오늘이나 달라진 게 없는 데 왜 새해 아침에 새로운 다짐을 하는가? 누가 새해라고 알려 주지 않으면 그 날이 새해인 것을 우리는 알기나 할까?

시간에 대해 심오한 생각을 한 사람은 어거스틴이다. 그는 그의 고백록 11권에서 이렇게 말한다. “그렇다면 시간이란 무엇인가? 누가 내게 묻지 않으면 나는 시간이 무엇인지 안다. 그런데 시간에 대해 묻는 사람에게 설명하려고 하면 나는 시간을 모른다. 그런데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지나가지 않으면 과거는 없다. 아무것도 오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 아무것도 없다면 현재는 없다.” 여기서 어거스틴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시간을 알기 어렵다는 것이다. 사건이 지나간 것(과거), 사건이 새로 일어날 것(미래), 현재가 지나가는 것과 시간은 뗄 수 없다고 그는 주장한다. 우리가 어떤 사건을 현재라고 하는 순간 그것은 이미 과거의 사건이 된다. 시간을 인식하는 것과 시간을 재는 것이 구분되어야 하는 이유다. 여기서 어거스틴은 시간의 주관적 경험과 객관적 측정이라는 양면성을 생각한다.

칼빈은 그의 기독교 강요에서 재미있는 이야기를 소개한다. 따지기 좋아하는 한 사람이 신학자에게 와서 묻는다. “하나님이 천지 창조하시기 전에 뭐 하고 계셨어요?” 이 질문에 당신은 무엇이라고 대답하겠는가? 칼빈은 신학자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칼빈의 뜻을 살려 정리해 본다. “너처럼 쓸데없는 질문하는 녀석 보내려고 지옥 만들고 있었다. 왜?” 여기서 칼빈은 이 신학자가 어거스틴이라고 밝힌다. 우리가 앞에서 본 어거스틴의 고백록을 인용한 것이다. 여기서 칼빈은 성경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알려 주는 것이 아니라 구원에 필요한 지식만을 알려준다고 강조한다. 그래서 앞의 저 사람의 질문처럼 무익한 것은 성경에서 알 수 없다고 말한다. 성경을 신중하게 읽고 잘 해석해야 하는 이유다. 그런데 칼빈의 이 이야기에서 우리가 관심해야 할 것은 어거스틴의 시간에 대한 생각이다. 왜냐하면 어거스틴의 시간에 생각은 심오하며 후대에 깊은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시간은 하나님이 창조하셨다고 어거스틴은 주장한다. 창조 전에는 시간이 없었다. 하나님은 시간과 상관없이 계셨고, 자신의 거룩한 뜻을 펼치기 위해 시간을 창조하셨다. 인간은 시간을 과거, 현재, 미래의 연속으로 인식하지만 하나님은 영원하시고 시간 밖에 계신다. 그래서 하나님에게는 과거, 현재, 미래가 동시에 있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에게는 이전이나 이후가 없다. 이 말은 하나님은 변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하나님은 시간의 흐름을 아는 것이 아니고 모든 시간이 동시적으로 인식된다. 하나님은 과거, 현재, 미래를 동시적으로 아신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미리 아심은 우리 인간의 자유의지와 모순되는가? 하나님이 이미 모든 것을 아신다면 이는 운명론이지 않는가? 그렇지 않다. 하나님은 우리의 자유를 속박하지 않으신다. 우리의 행위는 하나님의 예지 안에 미리 정해진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자유롭게 행할 행위를 알고 계실 따름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마음을 바꾸도록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알려진 하나님의 계획에 우리 자신의 의지가 순종하도록 기도해야 한다고 어거스틴은 강조한다.

이제 서쪽 해가 달력 마지막을 향해 서서히 저물어 가고 있다. 이때 우리는 어떤 생각을 갖는 것이 좋을까? 어거스틴은 시간은 주관적인 면을 갖는다고 한다. 과거는 이미 지나가버려 바꾸거나 변경할 수 없다. 미래는 아직 오지 않았으니 없는 것과 같다. 따라서 우리는 과거에 대해 후회하며 자책에 빠질 필요가 없다. 미래에 대해 막연히 불안할 필요도 없다. 다만 우리는 지나간 시간이 속삭이는 세미한 음성 가운데 하나님의 뜻을 찾고 우주를 섭리 가운데 운행하시는 하나님의 거대한 손길을 기다리자. 그리스의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는 말한다. “어떤 사람도 같은 강물을 두 번 건널 수 없다. 건너갈 같은 강물은 없으며, 또한 그 사람도 이미 같은 사람이 아니다.” 2023년은 우리가 좋아하건 좋아하지 않건 이미 지나가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어거스틴의 고백록의 또 다른 독백을 기억해야 한다. “내가 주님의 품에 안기기 전까지 내 영혼에는 진정한 안식이 없었나이다.” 흘러가는 세월 속에 우리가 안겨야 할 품은 하나님의 품이다. 그는 시간을 만드신 분이요, 모든 만물을 섭리 가운데 주관하시는 분이시다. 연말연시를 맞이하는 우리 모두가 기억해야 할 사실이다. 

구춘서 목사

<전 한일장신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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