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평전] 영원한 먹거리업, 수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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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기잡이(수산업)는 호미닌(Hominin·사람과에 속하는 현생 인류 조상)들의 고대문명시대, 중근세의 대항해시대, 21세기 오늘 AI시대에 이르기까지 인류역사 전체를 관통한다. 아프리카 탄자니아 올두바이 협곡에서 발견된 195만 년 전의 메기 뼈는 당시 인류가 수심(水深)이 낮은 곳을 이동하는 메기 떼를 잡는 매우 초기적 형태의 고기잡이를 했음을 유추하게 한다.

수산물(水産物)은 부패가 빨라서 한시적인 먹거리였지만 190만 년 전 불이 사용됐을 즈음에는 수산물도 장기적인 식량으로 취급된 것으로 추정된다.

수산업이 문명의 발달에 미친 정황은 ‘안데스 문명’에서 자세히 살펴볼 수 있다. 고고학자들은 인류문명은 보통 농경(農耕)에서 출현했다고 하지만, 남미대륙의 페루 바다연안에서 태동한 안데스 문명은 꼭 그렇지 않음을 보여준다. 1만여년 전부터 안초비(작은 멸치류의 물고기), 정어리 등 풍성한 어장에서 고기잡이를 하면서 인구가 증가했고, 기원전 2000년에 이르러서야 집약적 농경이 시작되기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물고기는 고대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사회에서도 흔한 양식이 되어주었다. 베드로 등 예수의 12제자 대부분이 어부였음은 수산업이 인류의 근본 생업이었음을 시사한다(신약성경 참조).

950~1000년 무렵부터는 어류(魚類)가 국제적 교역상품으로 발전했다. 청어, 대구는 노르웨이 등의 국가에서 주요 수출품이 됐다. 18세기에 들어서는 저인망 어선 같은 고기잡이 도구가 개발되면서 본격적으로 수산물을 잡아들여 어류 남획 문제가 발생하고 급기야 국가간의 전쟁까지 야기되었다.

어부는 역사적으로 무명의 존재들이었지만 인류 역사의 퍼즐을 짜면 어부들이 이룩한 바다의 역사는 농부들의 농경 역사 못지않게 인류 문명사에 중요한 획을 그었다. 20세기 후반부터 저인망에 의한 남획으로 물고기 수가 급감하자 이 해결을 위해 각국은 어업통제정책을 실시했다. 

아이슬란드는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대구(cod) 등 수산물을 남획하는 영국과 세 차례나 싸웠다. 작은 섬나라 아이슬란드는 수산업이 주산업이다. 마침내 불법어로로 인한 영국vs아이슬란드간에 대구전쟁이 일어났다. 이른바 ‘대구전쟁(The cod wars)’ 이다. 전쟁이라고 하기에는 규모가 작았지만 힘이 있다고 못되게 구는 이웃 영국을 어떻게 상대하여 승리하였는지 보여주는 해전(海戰)이었다. 그만큼 아이슬란드는 대구어장을 수호하기 위해 온 국민이 나서서 영국에 대항해 싸웠던 것이다.

1972년 9월! 영국 vs 아이슬란드간의 불법어로 전쟁, 그 전후 과정을 살펴보자. 영국은 선단(船團)을 조직해 저인망 어로행위로 아이슬란드 해역을 침범했다. 그러자 아이슬란드는 일단 50해리까지 배타적 어업수역을 다시 선포했다. 1950년대 영국과의 갈등 끝에 12해리를 인정받은 경험을 살려 대구를 대형어선으로 마구 싹쓸이하는 영국의 무도한 행위를 방어했다. 영국은 반발했다. 이때 독일이 자국의 어업권을 보호한다며 아이슬란드의 방어전에 동조했다. 마침내 아이슬란드 해안 경비정이 영국 트롤 어선의 그물을 잘라내자 영국은 힘 좋은 예인선으로 경비정을 들이받고, 전함까지 보내 전쟁 상황으로 몰고 갔다. 그러자 아이슬란드는 ‘지정학(地政學) 무기’를 꺼냈다. 영국과의 국교를 단절하고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탈퇴를 하겠다고 엄포를 놓은 것이다. 냉전이 한창인 때 만약 아이슬란드가 나토(NATO) 탈퇴를 한다면 이는 곧 아이슬란드와 구소련과의 협력을 의미했다. 붉은 러시아 발틱함대가 아이슬란드에 기지를 건설하고 유럽 앞바다를 자유롭게 돌아다니면 어떻게 할 거냐는 질문이 영국에 던져졌다. 결국 미국과 나토가 중재에 나선 끝에 1976년 6월 아이슬란드는 200해리 배타적 어업수역을 인정받고 영국과 국교를 정상화했다. 영해확보전(領海確保戰)에서 아이슬란드의 일방적인 승리였다. 1588년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꺾은 뒤 나폴레옹에게도 히틀러에게도 패배하지 않았던 로열 네이비(Royal Navy)인 영국 해군이 단단히 체면을 구겼다. 해양강대국 영국에 약소국이었던 아이슬란드의 승리는 국가 어업권 이익을 지키기 위해서는 다른 어떤 것도 희생할 수 있다는 아이슬란드의 국민적 동의가 전제됐기에 가능했다.

영국을 대표하는 음식 ‘피시 앤드 칩스’ 재료는 아이슬란드 인근 해역에서 많이 사는 대구다. 그래서인지 오늘날 아이슬란드에는 이런 말이 있다. ‘우리는 돈을 먹지 않는다’ 영국이 몸값이 비싼 대구 값으로 지불하는 돈에 비유한 것이다. 지금도 영국의 아이슬란드산(産) 대구 소비량은 어마어마하다.

아이슬란드 The Eastern Fjords Of Iceland 지역에서 말리고 있는 대구

김동수 장로 

•관세사

•경영학박사

•울산대흥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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