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창] “건국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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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역사상 최초의 근대국가 건설을 지휘한 대한민국 건국의 아버지 이승만 대통령의 생애와 업적, 한미동맹과 경제발전 등을 조명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이 상영 한 달만에 관객 100만 명을 돌파했다. 좌파 성향일색의 정치다큐 영화분야에서 제작비 3억 원의 저예산으로 이룬 놀라운 성과다. 건국전쟁은 이승만을 재평가하는 ‘역사적 부활’의 신호탄이다. 그동안 왜곡되거나 잘못 알려진 진실을 ‘팩트’에 근거한 실증적 영상자료 발굴을 통해 우리 국민이 가스라이팅당했음을 보여준다. 

역설적이게도 북한 김씨 세습 독재정권과 이들의 역사관에 오염된 좌파 정치세력이 독재자 친일파 프레임을 씌워 이승만 지우기에 70여 년간 공들여온데 대한 반작용이라 더욱 드라마틱하다. 김일성의 이승만 지우기 대남 심리전과 이에 동조한 좌파세력은 역사왜곡과 폄훼·날조로 건국 대통령의 공은 지우고 과(過)만 침소봉대하는 이승만 악마화에 몰두해 왔다.

그 결과 이승만 대통령에게 남북 분단의 책임을 지워 6.25전쟁의 책임을 묻고 한강대교를 끊어 국민을 버리고 도망친 비겁한 지도자 ‘런(run)승만’ 나아가 3.15부정선거로 자신의 집권을 연장하려한 독재자였다고 비난했지만 팩트에 근거해 이를 반박한다.

전쟁 중 한때 만주로 달아난 김일성과 달리 이승만은 해외 망명권유를 뿌리치고 현장에서 전쟁을 지휘했다. 1960년 3.15선거 한 달 전 야당 조병옥 후보 급사로 이승만은 대통령 당선이 확실시되던 상태였는데 부통령 후보 등 주변 잘못으로 부정선거 누명을 뒤집어 쓴다.

사회주의자 조봉암을 농림부 장관으로 기용해 추진한 농지개혁은 중산층을 만드는 씨앗이 됐다. 영화는 그간 이 대통령에 대한 몰이해, 폄훼, 누명을 바로 잡아준다. 한강대교 폭파 당시 경찰과 군인은 인도 아래 부교를 설치했고, 민간인이 이를 통해 건너게 해 실제 폭파시 민간인 희생자가 없었다는 사실 등 오해와 조작이 있었음을 밝혀낸다. 한미 방위조약체결 이듬해인 1954년 미국을 방문한 이 대통령이 뉴욕 맨해튼 영웅의 거리에서 카퍼레이드 하는 스펙터클한 장면도 나온다. 4.19혁명 당시 서울대 병원에서 희생된 학생들에게 내가 맞아야할 총알이 어떻게 이리 되었나 하며 눈물 흘렸다는 증언 등 학생들에게 용서를 빌며 눈물 흘리는 장면, 즉각적인 하야로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한 건국의 아버지, 개인적인 착복없이 검소하게 살다가 떠난 민족 지도자의 참 모습을 영상자료로 보여준다. 감격적이다. 이승만 대통령은 일제에 옥고를 치루며 온갖 고초를 겪고 있을 때 선교사들의 도움으로 배재학당을 졸업, 미국 프린스턴 하버드대학에서 국제정치학 박사를 받아 미국뿐 아니라 국내외 독립운동을 좌지우지했고, 50년대 당대 대통령으로서는 세계에서 가장 훌륭하고 한국의 장래를 꿰뚫는 혜안을 가지고 있었다.

‘건국전쟁’을 통해 올바른 역사 인식과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확신이 자유민주통일의 시발점이 되기를 간절히 염원하며 기도한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먼저 산 사람들의 노고를 잊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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