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광장] 생명의 신비

Google+ LinkedIn Katalk +

입춘이 지났지만, 아직도 바람은 차고 온통 쌀쌀한 기운이 가득하다. 산자락 음지에는 잔설이 그대로 남아 겨울의 그림자를 아직도 드리우고 있다. 그런데 주변의 앙상한 나무에 다가가서 자세히 들여다보니 메마른 나뭇가지에는 벌써 새봄을 준비하는 듯 복슬복슬한 움이 돋아나 있는 것이 아닌가? 

이번 겨울이 특별히 혹독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영하의 강추위에 꽁꽁 얼어붙은 땅속에서는 생명의 기운이 꿈틀거리고, 말라 죽은 것 같은 가지는 동토 밑 깊은 곳으로부터 생명수를 끌어 올려 마침내 새 눈을 틔우는 위대한 생명력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사실 계절의 순환과 동식물의 생태에 대해 많은 것을 밝혀낸 현대과학의 눈으로 보면 봄이 되어 나무에 움이 트고 꽃을 피우고 푸른 잎으로 무성해지는 것은 특별히 신기하지도 않다. 현대 물리학과 화학, 생물학은 우주와 세계의 신비를 빼앗아 가버린 것이다.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으로 태양, 지구, 별과 같은 모든 물체의 움직임을 완벽하게 설명하면서부터 우주는 이해 가능한 것이 되었고 하나님은 법칙을 만든 후에는 자연에 간섭할 필요가 없는 존재가 되었다. 우주의 모든 사건과 심지어 인간의 행동까지도 원자들의 무의미한 끊임없는 이합집산 운동으로 설명 가능하므로 인간을 포함한 우주의 모든 존재의 생멸이 우연적이고 무의미한 소동에 불과한 것이 된다.

또한, 다윈의 진화론은 인간의 지위를 침팬지와 같은 동물로 격하시키고 우리의 삶이 그저 우연적이고 무의미한 원자의 운동으로 시작하여 동물적인 욕망에 붙들려 생존경쟁의 차원에 머무르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 같다. 과학이 발전하면서 인간의 삶은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워졌지만, 우리 내면의 자화상은 무의미와 우연과 허무주의로 황폐해진 것은 참으로 비극이 아닐 수 없다. 

게다가 요즘 인공지능과 컴퓨터의 눈부신 발전은 우리 인간을 더욱 초라하게 만든다. 인공지능이 머지않아 인간의 지능을 앞지르고 심지어는 인간이 컴퓨터에 지배당하는 시대가 도래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 때문이다. 

그러나 다시 곰곰이 생각해보면 과학의 한계는 분명하다. 과학은 물질세계가 어떻게(how) 작동하는지에 대해 설명하지만, 왜(why) 이 우주가 존재하는지는 설명할 수 없다. 진화론으로 인간의 현재를 설명할 수 있지만, 인간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할 수 없다. 인간 존재의 의미를 과학은 알려주지 않는다. 인간은 자기 욕심대로 이기적으로 살 것이 아니라 동물적 한계를 뛰어넘는 고결하고 위대한 삶을 살 수 있지만, 과학은 우리가 왜 그렇게 살아야 하고 또 살 수 있는지 알려주지 못한다. 

게다가 생명이 지구상에서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인간과 같은 고등지능을 갖는 생명체가 어떻게 출현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지구 바깥 우주 어딘가에 또 생명이 존재하는지와 같은 질문에 대해 과학은 아직 답을 갖고 있지 못하다. 필자의 생각으로는 생물학이 아무리 발전한다고 해도 생명의 신비를 완전히 풀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생명이야말로 신비 중의 신비이고 인간의 지적인 능력으로 도저히 도달할 수 없는 신비의 영역으로 남아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어느 시인은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보다고 노래했다. 꽃 한 송이가 갖는 의미조차도 하나님 안에서만 발견할 수 있는 우리 인생의 지극히 깊은 비밀에 속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우리는 무엇이며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가에 대한 해답은 하나님 안에서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김완진 장로

• 소망교회

공유하기

Comments are clos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