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변질된 사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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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절하면 사순(四旬) 40일을 뜻한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할 때 40일을 금식하며 준비한 기간이다. 예수님은 성령에 이끌려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면서도 말씀으로 마귀를 물리치고 오로지 기도에 힘쓰며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이루기 위하여 절제하며 기도의 본을 보여주셨다. 그래서 우리나라 기독교 초창기를 보면 꼭 예수님처럼 금식하며 선한 행실로 본을 보여주었던 사람들이 많았다. 그만큼 선교사님들이나 초기 목사님들이 은사 받아 교회마다 은혜가 충만하여 금식기도, 철야기도, 산기도 등 기도의 불이 꺼지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의 현실을 보면 사순절이라고 해도 금식하는 사람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왜 이렇게 변질되었을까? 교인들이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고 목사가 문제다. 40여 년 전에 광나루에서 공부하면서 느낀 것이 있다. 학교의 학훈은 경건과 학문이었다. 그러나 신학생들 가운데 난잡하고 모난 학생들을 종종 보고 실망이 컸다. 지금도 그 사람들이 목회를 어떻게 하는가 이말 저말이 들려오기도 한다. 신학교 다니면서 천호동 족발집을 가는 것이 하나의 과정이라 하여 밤이면 삼삼오오 짝지어 나가는가 하면 워커힐 호텔가서 밥을 먹을 때는 전도사나 신학생이란 신분은 숨기고 회사에서 부르는 호칭을 따서 과장님, 전무님, 이대리, 이런 식으로 부른다고 한다. 그런 사람들이 오늘날 한국교회 가장 어른된 나이이고 은퇴를 했거나 은퇴가 눈앞에 다가오는 사람들도 많다. 그래서 교단 내 대선을 꿈꾸다가도 그런 잡음이 나오면 두말없이 자취를 감추기도 한다.

참으로 실망스럽다. 필자는 신학을 때려치고 집으로 내려오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 당시 신학생들에게 붙여진 별칭이 1학년은 목사, 2학년은 전도사, 3학년은 집사, 4학년은 잡사라고 부른다고 했다. 그만큼 영성이 떨어져 간다는 뜻이다. 지금도 목사들이 강단에서 외칠 때는 서로 사랑하라, 앞자리가 복자리다 하면서 자기들이 더 당을 지어 시기 질투하며 본인이 설교 안하면 맨 뒷자리에 앉아 앞자리는 텅텅 비어 이빨이 빠진 것처럼 보인다.

그러고 보면 한국교회 교인들이 참 좋다. 그렇게 허물이 많은 목사인 줄 알면서도 목사를 하나님 다음으로 잘 섬긴다. 물론 고약한 장로님이나 집사들은 목회자를 자기 종으로 취급하여 설교도 제한하고 밖에 출입하는 것도 막는 사람이 있다. 심지어 시골 교회에서 있었던 사례를 보면 교회 출입구에 자기집 트랙터를 갖다 세워 교회 봉고차가 밖에 못나가게 했다는 씁쓸한 말도 들었다. 

제발 우리는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 한국교회 초창기 목회자들은 순교하면서도 자기 몸을 희생하여 교회를 지켰다. 온갖 멸시 천대도 달게 받고 교회를 목숨보다 사랑했다. 그런데 최근에 닥친 코로나는 게으른 목회자들을 합리화하기 딱 좋게 만들어 놓았다. 심방을 안 가도 되고, 주일 낮 예배 외 다른 예배들은 아예 없애버린 교회들도  많다. 우리는 이제라도 정신을 차리고 예수님의 마음을 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훗날 죽어서 심판대 앞에서 나는 너를 도무지 모른다, 나를 떠나가라 하면 어떻게 할까?

필자가 목회학을 배울 때 붙잡는 교회에서 떠나지 말고 싫어하는 교회에서 버티고 있지 말라고 했는데, 오늘날 목회자들은 교회를 쑥대밭을 만들고 교인들에게 너무 많은 상처를 주기도 한다. 위임식까지 해드려 평생 같이 한다고 좋아하는 교인들을 실망시키고 더 큰 교회가 있으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난다. 이렇다 보니 후임목사는 결국 위임식을 안해주는 교회가 생기기도 한다. 우리는 정말 바울 사도가 청빈을 신조 삼은 것처럼 주면 받고, 안주면 마는 그런 다짐이 있어야 한다고 본다. 

사순절 기간동안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오로지 기도에 힘쓰며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이루기 위하여 절제하며  한국교회가 다시금 성령을 통해 다시금 부흥의 불길이 일어나길 기도해본다.

김준영 목사

<대중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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