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의 미학] 한 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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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관학교 교장공관 현관 앞으로 교수부 교수들이 한 줄로 줄을 지어 서 있었다. 삼성장군인 교장의 초청을 받아서 온 교수들이다. 형식은 초청이지만 군대에서는 실제로는 명령이지 초청이란 용어는 민간인들이나 쓰는 말인 것이다. 군대에서는 학교든 연구기관이든 명령만이 있을 뿐이다.

그러한 까닭에 덕수는 50을 바라보는 영관급 장교이면서도 마치 훈육선생님 앞으로 불려가는 중학생과 같은 무거운 마음이었다.

“이 사람아 받아 마시면 됐지 그걸 가지고 사나이가 쩨쩨하게 눈치보며 부탁을 하고 그러나.”

키가 훤칠한 교수부장은 빈정대듯 말을 했다.

“부장님은 잘 아시면서 그러십니까. 제가 마실 수 있다면 왜 이렇게 교장님께 말씀을 드려달라고 부탁을 드리겠습니까.”

“그러니까 내가 하는 말이야. 장소와 때에 따라서는 요령껏 마셔도 되는 게 아니냐 그 말이지. 이 사람아. 그러한 폐쇄적인 사고방식으로 어떻게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전도를 한단 말인가.”

공관 현관문이 열리고 현관 안에 교장이 서 있었다.

“여러분들! 1학기 동안 수고가 많았습니다. 이 나라와 겨레를 위한 간성을 육성 배출한다는 긍지로 언제나 교육에 임하여 앞으로 더욱 분발해 주기를 당부합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잔을 듭시다. 생도교육을 위하여!”

교장의 굵직한 위엄 있는 구호에 모든 교수들이 일제히 큰소리로 복창을 하면서 잔을 높이 들었다. 그리고는 모두는 단숨에 잔을 비웠다. 덕수는 겁먹은 아이처럼 힐끗힐끗 눈치를 살피다가 탁자 위에다 슬그머니 술잔을 그대로 내려놓았다.

이때였다. “지구과학 교수! 왜 잔을 안 비우고 내려놓는 거야?” “네? 네! 저는 술을…”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지적이라서 덕수는 어리둥절했다. 재빠르게 부장이 입을 열었다. “교장님 강 중령은 교회장로입니다.” “장로? 장로는 목사님과 똑같은 직위는 아니지 않소?”

군인교장이라서 따지는 내용도 군인식이다.

“도대체 교회에서 술을 금하는 이유가 뭐요? 우리 교수부장도 천주교인데 그쪽에서는 술 담배를 해도 상관이 없는데 말이야.”

“네! 그것은 술을 마시면 아무래도 정신이 흐려져서 경건하지가 못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여보시오 장로님. 그러구 보니까 장로님은 아주 졸장부이시군 그래. 이겨낸다는 것은 해내기가 어려운 것을 해냈을 때에 하는 말인데 아예 잘못될까 봐서 마시지도 못한다는 것은 그게 바로 비겁한 것이고 도피주의 사고방식이 아니냐 그 말이요. 그렇게 자신이 없는 거요? 마셔도 끄떡하지 않겠다는 자신 말이요.” 

“교장님! 그것도 이유이지만 가장 큰 이유는 교회의 규정이라는 점입니다.” 하도 보기가 딱해서인지 교수부장은 이렇게 말을 해야 통하지 않느냐는 투로 한마디를 했다. 역시 구관이 명관이라는 말대로 심중을 알아 정곡을 찔러내는 데에는 관록 이상으로 당할 것은 없었다.

“규정? 규정이라면야 더 할 말은 없지 암! 지켜야지. 강 중령! 규정이라면 어쩔 수 없지, 좋소!” 

덕수는 서너 사람 앞에까지 술잔이 돌아오자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 쪽으로 피했다. 덕수는 거울을 들여다보며 중얼거렸다. ‘이렇게 거짓으로 화장실에 피하는 게 술 한 잔 마시는 것보다 더 잘못된 게 아닐까.’ 

덕수는 다시 거울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 안에서 한 남자가 히죽이 웃고 있었다.

원익환 장로

<남가좌교회 은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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