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들의 생활신앙] 足不足(만족과 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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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어느 기업인은 어린 시절 인턴으로 심부름을 해서 받은 돈 12$을 호주머니에 넣고 화장실에 앉아서 만지작거릴 때가 가장 부자(부자로 생각함)였다고 말했다. 소유나 돈에 관해선 비교하는 데서 만족과 불만족이 결정된다. 설날 손자 손녀의 세배를 받고 세뱃돈으로 1만 원씩 주었는데 두 아이의 반응이 정반대였다. 손자는 퉁퉁거리고 손녀는 빵빵 터졌다. 이유를 물었더니 손자는 중학생이라 3만 원쯤 줄 것으로 기대했는데 1만 원을 받았으니 감사의 비율이 33%(1만 원/3만 원)이였고 손녀는 5천 원 정도 기대했는데 1만 원을 받았으니 감사의 비율이 200%(1만 원/5천 원)이였던 것이다. 똑같이 1만 원을 받았지만 감사와 기쁨의 정도는 33%와 200%로 달라졌던 것이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나물 먹고 물 마시고 두 팔 베고 누웠어도 온 세상 다 가진 듯 태평한 사람이 있고, 가질 만큼 가졌으면서도 늘 가난하고 아쉽게 사는 이가 있다. 옛사람의 글에도 이 같은 내용이 나온다. 송익필(宋翼弼/1534-1599)은 본관이 여산(礪山)이고 자는 운장(雲長)이며 호는 구봉(龜峰),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서출(庶出) 출신이라 벼슬을 하진 못했지만, 조선 중기 서인(西人) 세력의 막후 조정자 역할을 했으며 기축옥사(己丑獄事)를 일으킨 장본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그가 쓴 구봉집(龜峰集)에서 한 토막을 인용해본다. “군자는 어찌하여 만족하고 소인은 어찌하여 늘 불만족한가. 부족해도 만족하면 언제나 여유롭고 풍족하지만 부족타 여기면 언제나 부족하리다./여유로움을 즐기면 족하지 않음이 없고 부족하다 근심하면 어찌 만족할 때가 있으리오./승리 따라 처신하면 편안하니 또 무엇을 근심하랴. 하늘을 원망하고 남 탓을 해도 슬픔은 끝이 없으리라./내로부터 구한다면 족하지 않음이 없고, 밖에서 구한다면 어찌 능히 만족할 수 있으리오./한 개의 표주박 물로도 즐거움은 남음이 있지만, 만전짜리 육식에도 근심은 끝이 없다네./고금의 지극한 즐거움은 족함을 아는 것에 달렸으나 천하의 큰 근심은 불만족한데 있도다./진(秦)나라 이세(二世)가 망이궁(望夷宮)에서 베개를 높이 했을 땐 죽도록 즐기더라도 부족한 줄 알았고/당(唐)나라 현종(玄宗)이 마와파에서 길이 막혔을 땐 다른 삶을 산다 해도 만족하지 않았을 테고/필부의 한 아름도 족함을 알면 즐거우니 왕공은 부귀를 누려도 오히려 부족하다네./천자의 한 자리(왕좌)도 부족함을 알기에/필부의 가난에도 그 족함을 부러워했으니/부족함과 만족함이 모두 나에게 달렸으니 외물(外物)이 어찌 (내면의/심리적) 만족함과 불만족이 되리오./내 나이 일흔 살에 궁곡(窮谷)에 누워 있지만/남들이 부족하다 해도 나는 만족한다네./아침에 만봉(萬峰)에 흰구름이 피어 남을 보고 있으려면/저절로 갔다 저절로 오는 높은 운치에 만족하고/저물녘엔 푸른 바다가 밝은 달을 토해내는 걸 보노라면 끝없는 금 물결에 안계(眼界)가 만족하네./봄에는 매화 있고 가을엔 국화 있어/피고 짐이 끝없으나 깊은 흥취 만족하고/책상에 가득한 경서(經書)엔 도(道)의 맛이 깊으니/천고를 벗 삼음에 스승과 벗 족하다네./덕(德)이야 선현에 비해 비록 부족하지만/백발이 머리에 가득한 나이에 대해선 만족하네./내 즐길바 함께함이 참으로 때가 있어/몸 곁에 책을 간직한 즐거움이 더욱 만족하다네./하늘을 우러러보고 땅은 굽어 보는데 능히 자유로우니/하늘도 나를 보고는 족하다고 하리라.” 성경(잠언)에도 똑같은 말이 있다. “집에 진수성찬을 차려놓고 다투는 것보다 누룽지를 먹어도 마음 편한 것이 낫다. 슬기로운 종은 주인집 방탕한 아들을 다스리고 그 아들들과 함께 유산을 나누어 받는다.”(잠17:1-2)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창공은 나를 보고 티없이 살라 하네./탐욕도 벗어 놓고 성냄도 벗어 놓고 물같이 바람같이 살다가 가라 하네.”(법정스님이 애송한 나옹 선사의 선시다) 올 때는 흰 구름 더불어 왔고 갈 때는 함박눈 따라서 물처럼 바람처럼 살아가자.

김형태 박사

<한남대 14-15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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