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쁨의 미학] 독감방 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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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심심하시면 파고다공원이나 극장에 다녀오시면 되지 않느냐고 말하겠지. 그러나 그런 것으로는 허전한 마음이 채워지지가 않는 거야.”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다시 했다.

“간단하지는 않지. 혹 네가 아버지의 결혼을 찬성한다 하더라도 너의 동생들이 특히 여동생들이 다른 여인에게 아버지를 빼앗긴다는 피해의식으로 기를 쓰고 반대할 거야.”

“당연하지. 그게 사실이구.”

“하지만 그게 진짜 이유는 아닐게야. 문제는 네 자신이 이를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데에 있는 거야. 말하자면 너의 뿌리 깊은 고정관념이랄까 선입관념 말이야. 안 그래?”

“동방예의지국인 우리들이 어떻게 미풍양속을 해치는 그러한 것을 수용할 수가 있느냐 그 말이지.”

“해친다는 게 아니고 미덕이거든!”

성후는 신규를 바라다 보았다.

“여봐 신규!”

성후는 슬픈 얼굴이었다.

“너는 지금 무엇인가 엉뚱한 생각에 사로잡혀 있어. 넌 아버지를 주색잡기나 일삼는 사람처럼 몰아세우고 있단 말이야.”

“내가? 내가 아버지를?”

신규는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신규! 감옥에서 제일 혹독한 벌이 독감방이라는 것 알고 있나?”

“내가 말했었지 독감방에 대해서. 하루종일 밥 날라다주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볼 수가 없이 사방의 벽만 보고 있어야 하는 게 독감방이라고!”

“그런데 그게 어떻다고.”

“그 이상 가혹한 벌은 없을 거야. 하루 종일 말상대가 없다는 것. 너 상상할 수 있겠어? 시간이 흘러가는 소리가 들려오는 고독! 이것이 바로 생지옥이지. 미칠 지경이야.”

6.25때 앓아 누우신 어머니 때문에 피난을 하지 못해 인민군에게 잡혔던 성후에게는 독감방이 너무나도 끔찍하고 생생한 것이다. 크게 한숨을 쉬었다.

“나도 너와 같은 생각 때문에 돌아가신 어머님께 단 한 번도 남자친구에 대한 얘기를 하지 않았어.”

“흥! 아니 그렇게 말씀드렸다면 어머님이 오냐 하셨을 것 같애?”

“물론 그게 무슨 망측한 말이냐고 야단을 치셨겠지.”

“그러니까! 여봐 부족한 것 없이 다 해드리고 있는데 뭐가 고독하고 외롭고가 있어?”

“뭐라고?”

성후의 목소리가 높았다.

“너야말로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야! 지금이 해방 직후냐? 6.25 직후야? 누가 먹고 입기만 하면 감지덕지 한다는 거야!”

“왜 이래? 왜 화를 내?”

“미안해 큰소리 쳐서. 하지만 좀 생각해 보라구. 요새 신문에 보도되는 것 보았지? 먹고 입고 사는 데에는 전혀 걱정이 없는데도 외로움에 지쳐 목숨을 버리는 홀로 되신 노인네들 말이야.”

말이 끊겼다. 침묵이 흘렀다.

“내 말은 네 아버님께 말상대를 소개해 드리라고 말하는 거야. 우리는 자유롭게 친구들과 대화를 하면서 왜 홀로 되신 부모님은 그래서는 안된다는 거야? 결혼하시라는 게 아니고 말동무가 되시라는 거야!”

“그게 그거지.”

기가 막혀 어이가 없다는 얼굴이다.

“그럼 넌 끝까지 못하겠다는 거야?”

“하지만 난 독감방 간수는 아니야!”

신규는 큰소리로 웃었다. 그러자 덩달아 성후도 큰소리로 웃어 젖혔다.

원익환 장로

<남가좌교회 은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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