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산책] ‘졸업식노래’ 탄생의 비화(秘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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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나이가 지긋한 사람들이 국민(초등)학교 졸업식 때 부르던 <졸업식노래>가 제정된 배경과 상황이 매우 흥미롭다. 1946년 6월 6일, 해방된 지, 겨우 10개월! 중앙청에 성조기(星條旗)가 나부끼고 주한미군사령관 겸 미군정청(美軍政廳) 군정사령관이던 하지(John Hodge, 1893~1963) 미육군 중장이 38도선 이하의 조선 땅을 통치하던 무렵, 당시 군정청 편수국장은 오늘날 한글학자로 유명한 외솔 최현배(崔鉉培, 1894~1970) 선생이었다.   

그가 어느 날 한 아동 문학가를 찾아간다. “여보 석동, 노래 하나 지어 주시게. 졸업식 때 쓸 노래가 마땅치가 않소. 궁여지책(窮餘之策)으로 외국곡을 이것저것 가져다 쓰는 형편이니 석동이 하나 지어 줘야겠소.” ‘석동’(石童)이라는 아호를 가진 사람의 본명은 윤석중(尹石重, 1911~2003) 선생이었다. 어느 신문에선가 윤석중 선생을 소개하면서 ‘윤석중’의 ‘무거울 중(重)’을 ‘아이 동(童)’으로 잘못 알고 ‘석중(石重)’을 ‘석동(石童)’이라고 쓴 것을 발견한 춘원 이광수가 “석동이라는 아호가 좋네.” 라고 하자, ‘석동’이 아호가 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윤석중 선생은 해방 직후 “새 나라의 어린이는 일찍 일어납니다. 잠꾸러기 없는 나라 우리나라 좋은 나라”를 작사하여 해방된 조선의 어린이들이 목청껏 노래를 부르게 해 주었던 그 사람이었다. 최현배 선생이 보기에는 일제 때부터 동요 작사가로 이름을 날린 윤석중 선생은 <졸업식노래>를 만들 최적임자였을 것이다. 윤석중 선생이 지은 노래 몇 개만 흥얼거려 보면, “엄마 앞에서 짝짜꿍, 아빠 앞에서 짝짜꿍” “기찻길 옆 오막살이, 아기, 아기 잘도 잔다.” 그리고 어린이날만 되면 울려 퍼지는 “날아라, 새들아 푸른 하늘을! 달려라 냇물아 푸른 벌판을!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등이 있다.  

최현배 선생이 <졸업식노래>를 의뢰한 게, 1946년 6월 5일이었다. 최현배의 부탁을 받자마자 윤석중의 머릿속에는 시상(詩想)이 번득였던 것 같다. 원래 악상(樂想)이나 시상은 시간에 쫓기는 운전기사가 모는 버스 같아서 제때 손을 들지 않으면 ‘휙’하고 지나가 버리는 법이다. 윤석중 선생은 그날이 저물기 전에 가사를 완성한다.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꽃다발을 한 아름 선사합니다. 물려받은 책으로 공부를 하며 우리들도 언니 뒤를 따르렵니다.” 작사를 완성하고 나서 윤석중 선생이 급히 찾은 사람은 수많은 동요를 작곡한 정순철(鄭淳哲, 1901~1950) 작곡가였다. 그가 바로 <새 나라의 어린이> <엄마 앞에서 짝짜꿍>의 작곡가이다. 정순철 작곡가의 아드님의 회고에 따르면 정순철 선생 또한 가사를 받고 악상이 번개같이 스치고 지나간 듯하다. 아버지가 허겁지겁 피아노를 두들기다가 악보에 콩나물을 급하게 그려 나가던 모습을 회상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토록 성미 급한 작사가와 작곡가는 어느 설렁탕집에서 만난다. “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잘 있거라, 아우들아 정든 교실아!” 졸업식 노래는 이렇게 엉겁결에 탄생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 가사와 곡조는 결코 허술하거나 엉성하지 않다. <졸업식노래>의 1절은 교과서도 제대로 없어서 선배들로부터 물려받아 공부해야 했던 시절을 묘사하고 있다. “①빛나는 졸업장을 타신 언니께 꽃다발을 한 아름 선사합니다. 물려받은 책으로 공부를 하며 우리들도 언니 뒤를 따르렵니다.” 

그런데 2절을 부를 때 졸업식은 눈물바다가 되기 일쑤였다. “②잘 있거라. 아우들아, 정든 교실아, 선생님 저희들은 물러갑니다. 부지런히 더 배우고 얼른 자라서 새 나라의 새 일꾼이 되겠습니다.” 졸업식 노래의 3절은 졸업생과 재학생의 합창이었다. “③앞에서 끌어주고 뒤에서 밀며 우리나라 짊어지고 나갈 우리들, 강물이 바다에서 다시 만나듯 우리들도 이다음에 다시 만나세.” 1절 가사 중에 “꽃다발을 한 아름 선사합니다.”가 애창되면서 꽃집에는 꽃다발 주문이 홍수를 이루었는데 원래 윤석중 작사가의 의도는 “마음의 꽃다발”이었다고 한다.

한 가지 가슴 아픈 사실은 작사가 윤석중 선생의 가족은 6.25 전쟁의 발발(勃發)로 생겨난 좌익이니 우익이니 하는 이념논쟁의 와중(渦中)에서 온 가족이 몰살당하는 불행을 겪었고, 작곡가 정순철 선생은 서울이 수복되던 9월 28일 인민군에게 납북되었으니 이는 모두가 동족상잔(同族相殘)이 낳은 참담한 비극의 산물이었다.

문정일 장로

<대전성지교회•목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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