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산책] ‘노인(老人)’을 떠올리는 언어유희(言語遊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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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태어나서 살다가 늙고 병들어 죽음에 이르는 과정은 ‘생로병사(生老病死)’로 정리가 된다. 젊은이들에게 노년은 먼 얘기 같지만 시간이 거꾸로 흐르지 않는 한, 불원(不遠)해서 ‘노년’이 들이닥치게 마련이다. ‘노인’을 한자를 통한 언어유희(言語遊戱=말을 가지고 놀기)로 풀어보면 흥미롭다.

먼저 ‘사람이 아니다’를 뜻하는 ‘노인’이 있다. 영어에서 부정적인 진술을 뜻하는 ‘No’와 ‘사람 인(人)’의 합성어 ‘No人’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런 어른들은 지혜를 쌓지 못해 반사회적(反社會的) 행동과 언행으로 주변 사람이나 후손, 후배들에게 폐를 끼치는 ‘노인’을 말한다. 집안에서 자녀들에게 외면당할 때도 있다.

‘화만 내는 사람’이라는 뜻의 ‘성낼 노(怒)’의 ‘노인(怒人)’이 있다. 주변에 권위만 내세우고 자기 경험만 앞세우는 고집불통 또는 편집증(偏執症)의 사고방식으로 젊은 세대와 갈등을 일으키는 사람을 말한다. 그 외에도 새로운 문화와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는 ‘둔할 노(駑)’의 ‘노인(駑人)’도 환영받지 못한다. 

인생의 주인이 되지 못하고 ‘노예(slave)’를 뜻하는 ‘종 노(奴)’의 ‘노인(奴人)’도 있다. 그 밖에도 「쇠로 만든 활[弓]」을 뜻하는 ‘쇠뇌 노(弩)’의 강인한 노인(弩人)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갈대처럼 흔들리는 ‘갈대 노(蘆)’의 ‘노인(蘆人)’도 있다. 한편 ‘길 로(路)’의 ‘노인(路人)’도 있으니 이는 ‘길에서 치매로 헤매는 어른을 가리키는 말이라 풀이하고 싶다, 또 ‘화로 로(爐)’의 ‘노인(爐人)’도 있다. 화로 옆에서 정담(情談)을 나누는 연세 드신 어른을 뜻한다. 그런가 하면 ‘밥그릇 노(盧)’의 ‘노인(盧人)’도 있으니 하루 종일 집에서 밥그릇만 축내는 어른을 가리킨다.

반면에 젊은 세대가 스승으로 삼아야 할 노인들도 많다. ‘일할 노(勞)’의 노동(勞動)을 즐기는 ‘노인(勞人)’은 80대 고령에도 불구하고 글을 배우려고 학교를 다니는 할머니와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는 할아버지가 대표적인 경우이다. 이들은 인생의 목표를 ‘공부’라고 꼽는다. 

또 나이 들어서도 쉬지 않고 노력(努力)하는 ‘힘쓸 노(努)’의 ‘노인(努人)’이 있는가 하면, ‘이슬 로(露)’의 ‘노인(露人)’도 있다. ‘이슬 노(露)’를 옥편(玉篇)에서 찾아보면 ‘이슬’이라는 명사 외에 동사의 의미로 ‘적시다’ 또는 ‘은혜를 베풀다’의 뜻을 담고 있다. ‘은혜를 베푸는 어르신(露人)’은 우리가 모름지기 닮고 싶은 ‘이미지(像)’가 아닐까 싶다. 평생 모은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고 빈손으로 떠나는 분들, 그리고 인생에서 쌓은 지혜와 경험을 이웃과 후학(後學)에게 전승(傳承)하는 어른들이 바로 그들이다.

아프리카 속담에 “노인 한 사람이 죽으면 도서관 한 개가 없어지는 것과 같다”는 말이 있다. 소크라테스는 “노인들은 우리가 걸어가야 할 인생의 길을 먼저 지나왔다. 앞으로 겪어야 할 삶이 어떠할지는 그들에게서 배울 수 있다”라고 했다. 

바람직한 노인은 단순히 나이가 많은 사람이 아니라, 지혜와 경험을 바탕으로 사회에 기여하고, 젊은 세대에게 귀감(龜鑑)이 되는 노인일 것이다. ‘젊은 때’를 ‘인생의 아침’이라고 한다면 ‘늙은 때’는 ‘인생의 황혼’이 된다. 달음박질 마당에서 경주를 할 때, ‘시작’도 잘 해야 하려니와 마지막까지 ‘마무리’를 잘 해야 상(賞)을 타게 된다. 그래서 「유종(有終)의 미(美)」를 강조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인도의 유명한 시인 타골(Tagore, 1861~1941)은 “나는 나이가 점점 많아지면서 내가 젓고 있는 노(櫓)를 더 이상 의지하지 아니하고 이제는 돛을 높이 달고 바람을 의지하노라”고 했다. 그렇다. 나 자신을 너무 의지하지 말고 믿음의 돛을 높이 달고 바람을 보내주시는 하늘의 능력을 의지해야 한다. 

육신의 눈이 어두워질 때, 신령한 눈이 밝아진다. 나뭇잎은 떨어질 때가 가장 아름답고 과일은 가을이 되어 익을 때가 제일 아름답다. 햇빛도 서산낙조(西山落照)가 제일 아름답다. 인생의 노년시대는 인격과 믿음이 원숙(圓熟)해지는 때이다. 그러므로 ‘성도(聖徒)’가 늙어가는 것은 서글픈 일이 아니다. ‘아름다운 노년의 그리스도인’ㅡ 그들은 젊은이들에게 새로운 힘을 주는 좋은 ‘역할 모델’이 되기 때문이다. 

문정일 장로

<대전성지교회•목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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