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을 알면 교회사가 보인다 (37)
노예해방 100년, 흑인들의 꿈 노래한 가스펠 송
‘우리 승리하리라’(“We Shall Overcome”)는 1800년대 후반부터 불리기 시작한 흑인들의 가스펠 송으로 틴들리(Charles Albert Tindley) 목사의 찬송가(“I’ll Overcome Some Day”)에 실렸다. 이 찬송은 1946년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의 찰스턴에서 담배회사의 노동자 파업 시위 때 불렸고, 포크 가수이며 인권운동가인 피트 시거(Pete Seeger)가 채보해 1948년에 펴낸 민요집에 수록했다. 하일랜더 민속 학교에서 비폭력 시민권 투쟁 중에도 불러 시민권 운동의 저항 노래로 자리매김하면서 구전으로 퍼져 남부 아프리카계 미국인 노동조합과 시민권 운동 주제가가 되었다.
1960년 봄, 노스캐롤라이나 그린즈버러 버스터미널의 한 식당에서 흑인 학생 네 명이 식당 좌석의 흑백 분리 철폐 주장으로 불붙기 시작한 프리덤 라이드(Freedom Ride)는 미연방대법원이 버스 좌석의 흑백 분리를 불법으로 선포하면서 무서운 기세로 미국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1963년 8월 노예해방 100주년을 기념해 마틴 루터 킹 목사가 주도한 ‘시민 권리 워싱턴 대행진’은 미국 전역에서 25만 명의 군중들이 워싱턴에 모여들었다. 링컨 기념관을 향해 군중들이 마지막 대행진을 시작했고, 행진이 끝나자 마틴 루터킹 목사가 연단에 올라 유명한 연설(“I have a dream”)을 시작했다. 연설 후 밥 딜런, 조안 바에즈, 해리 벨라폰테, 마할리아 잭슨 등 쟁쟁한 가수들이 등장해 노래를 불렀다. 조안 바에즈가 등장해 ‘우리 승리 하리라’를 부르자 25만 명의 군중들이 따라 불렀다. 당시 뉴욕타임즈는 이 노래를 가리켜 프랑스 국가(國歌)에 비견할 ‘미국의 라마르세예즈’라고 보도 했다.
1964년 존슨 대통령은 흑인들의 권리 신장을 위한 민권법에 서명했고, 민권법은 1965년에 투표권법으로 이어졌으며, 1968년 평등 주택법은 거주, 주택 구입을 위한 융자 등 차별을 하지 못하도록 했다. 그러나 킹 목사는 1968년 총을 맞고 쓰러졌다. 며칠 후 장례식에 참석한 5만여 조객들은 ‘우리 승리하리라’를 불렀다.
이 멜로디는 미국의 작곡가 윌리엄 로랜드(William Rowland)의 교향곡에서도 사용되었다.
우리나라 가톨릭 성가 451장엔 “주께 나아가리다. 주님 앞에 나아가리다. 오 마음속 깊이 믿음으로 주께 나아가리다”란 가사로 실려 있다.
김명엽 장로
<교회음악아카데미 원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