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광장] 죽음에 대하여

Google+ LinkedIn Katalk +

새봄을 맞는데 죽음을 생각하고 이야기하는 것은 마땅치 않지만 내 또래 사람이면 사실 누구나 머릿속에 죽음이라는 명제를 담고 산다. 무엇을 하면서 잠깐씩 그걸 잊을 뿐이다. 

자리에 누워 잠들기를 기다리면서 이 시간이 내 생명의 끝일 수도 있겠다 가정도 해보는데 이튿날 아침 깨어나면 하나님이 또 한차례 죽음을 체험케 하시고 새로운 날을 허락하셨음에 감사한다. 이러는 가운데 우리(나)는 죽음에 한발짝 다가가고 있다.

죽음을 원하는 사람은 없고 나와 가족의 무병장수는 모든 인간의 염원이다. 그러나 노년에 접어들면 하루하루 연장되는 내 삶의 무게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몇 그램씩 졸아드는 것을 우리는 깨닫는다. 

부자의 재산은 날로 증식될지 모르나 내가 쓸 것은 병원비와 구제 지출밖에 없다. 정치인이라면 그의 영향력은 어쩔 수 없이 날이 갈수록 쇠퇴하게 마련이고 과거의 당수나 최고위원은 이제 고문이나 자문역 타이틀에 만족해야 한다. 

나이 듦이란 만나서 함께할 사람들의 범위가 날로 좁아지는 것을 의미한다. 

매년 10-20명의 동창생들이 별세하고 기별 동창회 장소도 호텔에서 식당 같은 곳으로 바뀌어 오붓한 분위기는 맛보지만 안 보이는 얼굴들이 그립다. 

만일 백세장수라도 한다면 주위에는 자식 손자 몇 명 말고 나를 알고 찾을 사람이 열 손가락 채우기도 어려울 것이다. 

70, 80줄에 들면 대체로 사람들은 자신의 인생 과업을 다 마치고 어떤 새로운 것을 더함이 없이 소소한 일상을 되풀이하며 산다. 아직 국내외로 못 가본 곳이 많지만 새로 맘먹고 찾아가지 못한다. 

평생 이름만 듣고 읽어보지 못한 고전이나 화제작들을 구해서 독파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친숙한 성경을 펼치든지 가만히 앉아서 눈과 귀만 향하면 되는 TV나 OTT영화로 시간을 보내게 된다. 

저술가라면 컴퓨터를 열고 자판을 두드려 무슨 소재에 대한 소견을 정리해보기도 하겠지만 이걸 출판할 생각도 없고 또 책을 낸들 누가 관심을 두겠나?

그런 나날을 보내면서도 죽음이 싫은 것은 어인 까닭인가? 이 생을 마치면 천국에 들어 예수님도 뵙고 먼저 가신 부모님, 친구들도 반가이 만나게 될 터인데도.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짐은 가장 슬픈 일이지만 그건 내가 살아있는 동안의 이야기이고 죽음은 나를 이 슬픔에서 해방시킨다. 

내가 죽고 싶지 않은 첫째 이유는 무언가? 그건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나를 먼저 떠나 보내고 슬퍼할 그 슬픔이 너무 가슴 아프고 불쌍하기 때문이다. 

아내는 이 집에 혼자 남는 것이 제일 두렵다고 밤낮 중얼댄다. 그러면서도 자기가 먼저 가고 남편 혼자 남는 건 더 싫다고 한다. 

이래저래 죽음은 가장 혐오스러운 사건이니 나의 신앙생활은 결국 실패한 것인가 하나님께 묻고 싶다.

‘죽음 앞에 겁을 내는 자여 주 예수 앞에 다 아뢰어라.’ 오늘 아침 우리 부부 가정예배 찬송입니다.

김명식 장로

• 소망교회

공유하기

Comments are closed.